고전 번역가

모든 나라가 군대를 두는 이유는 무엇일까? 군대는 외부의 적으로부터 나라의 혼란을 예방하기 위해 만든 합법적인 무력기구이다. 춘추시대 인물인 자한(子罕)은 군대의 의미를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권력을 잡은 자라면 그 누가 군대를 없애겠는가? 군주를 세우는 일과 반역하는 자를 토벌하는 일과 나라의 기강을 세우는 일은 군대를 이용하지 않고는 할 수 없는 일이다.”

상(商)나라는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은(殷)나라를 뜻한다. 주(紂)왕이 등극한 후에 정치는 실종되었고 백성들을 괴롭히는 폭정만 극도에 달했다. 이에 나라를 걱정하는 신하 비간, 기자, 미자 등이 목숨을 걸고 충고하였으나 주왕은 도무지 듣지 않았다. 오히려 신하 비간을 증오하여 그 속이 어떻게 생긴 놈인지 보자고 하며 가슴을 갈라 심장을 꺼내 죽였다. 주왕의 잔혹함이 이 지경에 이르자 모두들 상나라는 곧 망할 것이라고 했다. 신하들은 하나둘 왕의 곁을 떠났다.

그 무렵 주(周)나라는 상나라를 섬기는 작은 부족이었다. 무왕(武王)이 부족장에 오르자 강태공을 스승으로 모시고 천하의 현량재사들을 받아들였다. 그러자 부족의 세력이 나날이 커져갔다. 이에 정치를 바르게 하고 군사를 훈련시키자 그 강성함이 주변에 알려지기 시작했다.

기원전 1000년, 무왕은 드디어 때가 되었다고 판단하여 상나라 타도에 나섰다. 병법에 뛰어난 강태공에게 군사 5만을 주어 황하를 건너 상나라 도성으로 향하도록 하였다. 주나라 군대가 지나는 곳마다 무려 천여 지역의 제후들이 무왕을 칭송하여 군대를 이끌고 합류하였다.

이 무렵 상나라 조정에서는 무왕이 쳐들어온다는 소식에 황급히 군사 동원력을 내려 70만 명을 모집하였다. 상나라에서는 이 정도의 병력이면 무왕의 5만 군대를 무찌르는 것은 식은 죽 먹기라고 자신만만하였다. 그러나 막상 전투가 시작되자 상황은 상나라의 판단과는 크게 달랐다. 무왕의 군대는 잘 훈련되어 그 기세와 동작이 민첩하고 절도가 있었다. 하지만 상나라 군대는 일반백성들을 마구잡이로 잡아들여 전혀 훈련된 바가 없었다. 게다가 주왕의 학대에 오래 전부터 이를 갈고 있던 이들이라 상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치려는 자가 아무도 없었다. 무왕의 군대가 진격해오자 모두들 창과 칼을 내던지고 투항하였고, 도리어 원한과 분노를 가지고 상나라 공격에 앞장서는 상황이었다. 이렇게 해서 상나라 70만 대군은 한 순간 무너지고 말았다. 군대가 괴멸하였다는 말에 주왕은 궁궐에 불을 지르고 그 속에 뛰어들어 자살하고 말았다. 이로써 상나라가 멸망하고 주(周)나라가 건국되었다. 이는 사마천의‘사기본기(史記本紀)’에 있는 이야기이다.

견갑이병(堅甲利兵)이란 견고한 갑옷과 날카로운 무기란 뜻이다. 즉 강한 군대를 이르는 말이다. 전쟁에서 이기는 몇 가지 비결이 있다. 훈련된 군대가 훈련되지 않은 군대를 이긴다. 병법을 아는 장수가 병법을 알지 못하는 장수를 이긴다. 정치가 바른 나라가 정치가 혼란한 나라를 이긴다. 세상살이 또한 이와 크게 다르지 않으니 살면서 명심해두면 좋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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