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진명 시인 충북예술고 교사

옛날에 클라우쩨비츠의 ‘전쟁론’을 읽은 적이 있습니다. 너무 지루하고 몽롱했던 기억만 남았습니다. 생각해보면 전쟁이라는 것이 싸움의 방법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나라와 나라간의 여러 가지 복잡한 관계를 설명하다 보니 그런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합니다. 그리고 번역의 지루함도 한 몫 했을 것입니다.

손무의 손자병법은 동양에서는 이미 고전에 해당합니다. 나라 간에 전쟁이 벌어질 경우, 지도자가 생각해야 할 여러 가지 조건을 하나하나 검토한 것입니다. 그래서 지루하기는 마찬가지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익히 아는 시대를 배경으로 하는 까닭에 아무래도 덜 지루합니다. 그리고 전쟁에 관한 것이기는 하지만 사람들 사이에서 벌어지는 여러 가지 사고방식에 관한 기록이기 때문에 한 개인의 생존방법에도 많은 암시를 줍니다. 그래서 옛날부터 많은 사람들이 탐독했던 책이기도 합니다. 어려운 시대를 사는 지혜를 배울 수 있는 책입니다.

사실 손자병법은 전쟁에 관한 것이기 때문에 실제로 전쟁 상황이나 다름이 없는 기업이나 회사 관계자들에게는 필독서이기도 합니다. 약육강식의 시대에 상대의 허를 찌르거나, 내가 허점을 드러내지 않는 방법은 아주 중요합니다. 승부의 세계로 접어들면 실제 전력보다는 상대가 미처 생각하지 못한 방법으로 허점을 찾는 것이 오히려 큰 효과를 내기도 합니다. 전쟁의 목적은 이기는 것이기 때문에 이기기 위한 모든 방법이 가장 좋은 방법이기도 합니다. 그 과정에서 인간성이 드러납니다. 인간의 잔혹성과 비열함 같은 것이 상대를 이기기 위한 과정에서 나타나죠. 전쟁을 겪어보면 인간이 얼마나 한심하고 잔혹한 동물인가 하는 것을 잘 알게 됩니다. 그런 가운데서도 사람이기에 나타나는 사랑의 행위가 온 세상을 피바다로 만들어도 아름다운 꽃처럼 피어나 절망에 빠진 인류에게 희망을 주죠.

손자병법의 ‘지피지기면 백전불태'라는 말은 이미 온 세상 사람들이 아는 명언이 되었습니다. 세상살이를 전쟁의 상황에 빗대는 것처럼 비참한 것도 없습니다. 실제 생활은 전쟁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온 나라가 전쟁에 휘말렸던 시절 이런 글을 쓰지 않을 수 없었던 사람의 마음도 이해할 수 있습니다. 손무라는 인물은 그런 시대를 살아야 했던 인물입니다. 손자병법에서 가장 강조한 것은, 전쟁에서 이기는 방법이기보다는 전쟁 수행의 어려움입니다. 앞부분에서 전쟁을 수행할 수 있는 조건을 나열하는데, 그것을 읽다보면 전쟁이라는 것은 이겨도 질 수밖에 없는 묘한 것이구나 하는 생각이 절로 듭니다. 저절로 전쟁에서 이겨봤자 나에게 득될 것이 별로 없다는 깨달음에 이르죠. 그래서 이 책이 과연 손자가 전쟁에서 이기는 법을 강의하려고 한 것인지, 전쟁 하려는 사람의 마음을 전쟁 하지 못하도록 말리려는 것인지 헛갈릴 때가 많습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한 때 붓글씨를 독학으로 해보겠다고 생각한 적이 있습니다. 그때 습자지에 작은 붓으로 깨알같이 써내려간 책이 바로 손자병법이었습니다. 그때 왜 이 책을 읽고 그렇게 써내려갔는지 잘 모르겠습니다만, 저한테는 이런 추억이 있는 책입니다. 그렇지만 고등학교를 막 졸업한 학생이 읽기에는 결코 만만찮은 책입니다. 어려워서 그랬는지 결심이 물러서 그랬는지 3분의 1가량만 쓰고 말았던 기억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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