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 번역가

기원전 524년 주(周)나라 경왕(景王)은 천하에서 제일 큰 종을 만들고자 했다. 하지만 종을 만드는 재료를 구하기가 어려웠다. 종을 만들려면 동과 철이 있어야 하는데, 그 무렵 이들 재료는 모두 돈을 만드는데 쓰였다. 시중에 유통되는 돈은 두 가지였다. 대전(大錢)은 귀족과 부유한 사람들이 사용하는 돈이었고, 소전(小錢)은 일반 백성들이 사용하는 돈이었다. 하루는 돈을 주조하는 신하가 보고하기를 돈을 만드는 재료가 부족하다고 하였다. 경왕이 이 보고를 받자 당장 소전을 폐기하고 새로운 화폐를 만들도록 했다. 이는 일대 화폐 개혁이었으나 백성들이 소유한 돈만 폐기하는 것이라 당연히 백성들의 원망이 큰 것은 말할 것도 없는 노릇이었다. 백성들은 즉각 반발하였다. 그러자 두려움을 느낀 조정 대신들이 이를 경왕에게 보고하였다. 그러나 경왕은 이를 듣지 않았다. 결국 소전은 폐기되고 말았다.

이때 경왕은 쓸모없는 소전을 모두 거두어 천하에 둘도 없이 큰 종을 만들라고 명했다. 그러자 음악을 담당하는 신하 주구가 아뢰었다.

“폐하, 소전을 거두어 만든 종은 분명 소리가 좋지 않을 것입니다. 백성들의 원망이 깃든 화폐가 어찌 아름다운 소리를 낼 수 있겠습니까?”

그러자 경왕이 그 이유를 따져 물었다. 이에 주구가 대답했다.

“종소리가 좋다 나쁘다는 것은 백성들이 그 종소리를 좋아 하는가 아닌가를 말하는 것입니다. 그 종소리가 아무리 아름답다고 하더라도 백성들의 귀에는 크게 거슬릴 것입니다. 이는 백성들의 원망이 깃든 돈으로 만든 것이기 때문입니다. 폐하께서 만일 종을 만들고자 하신다면 백성들의 동의를 얻는 종을 만드셔야 합니다. 그런 종이라면 틀림없이 종소리도 아름다울 것입니다. 하지만 백성들이 원망하고 반대한다고 하면 종소리는 조화롭지 못할 것입니다. 백성들이 찬성하는 일은 항상 성공하기 마련이고, 백성들이 싫어하는 일은 분명 실패하기 마련입니다. 전해오는 말에 여러 사람이 한마음으로 협력한다면 세상에 아무리 견고하고 웅장한 성이라 해도 능히 축조할 수가 있다고 했습니다. 폐하, 부디 세심히 살펴주시기 바랍니다.”

그러나 경왕은 이를 듣지 않고 마침내 무력을 동원하여 강제적으로 거대한 종을 완성시켰다. 아첨하기 좋아하는 신하들이 그 종소리를 듣고 아뢰었다.

“폐하, 종소리가 매우 조화롭고 듣기에 좋습니다.”

이에 경왕이 의기양양하여 제조에 반대하였던 신하 주구를 불러 말했다.

“모든 신하들이 이 종소리가 듣기 좋다고 하였소. 이전에 그대가 지나치게 염려하여 반대했던 것과는 결과가 전혀 다르지 않소?”

이듬해 경왕이 죽었다. 장례를 마치고 추모하는 뜻으로 그 거대한 종을 울렸다. 하지만 이번에는 어느 누구도 종소리가 듣기 좋다고 말하는 사람이 없었다. 이는 좌구명이 지은 ‘국어(國語)’에 있는 이야기이다. 중지성성(衆志成城)이란 여러 사람이 일치단결하면 성처럼 견고해진다는 뜻이다. 적폐청산은 정의를 세우는 일이다. 정의는 백성들의 지지가 따르기 마련이다. 이번에는 기필코 나라다운 나라를 만들어야 한다. 이는 대대손손을 위한 일이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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