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 번역가

기원전 314년, 연(燕)나라 왕 쾌는 국정에 무관심하여 재상에게 모든 권한을 맡겼다. 재상이 권력을 남용하여 자신의 기반을 세우려하자 태자 평(平)이 반대하여 정권 탈취에 나섰다. 나라는 일시에 혼란에 빠졌다. 내전은 오랫동안 지속되었다. 이때를 틈타 제나라에서 군대를 몰고 들어와 재상과 태자의 세력을 모두 와해시켰다. 재상과 태자를 살해하였고, 군주 쾌는 자결하였다. 이로써 연나라는 일순간 제나라에 복속되었다. 이때 쾌의 둘째아들 희직(姬職)은 한나라로 달아났다.

2년 후 기원전 312년, 제나라에서 희직을 연나라 왕으로 세웠다. 이가 곧 소양왕(昭襄王)이다. 소양왕의 즉위는 연나라가 제나라의 속국이 된다는 조건이었다. 하지만 소양왕은 제나라에 복수를 결심하였다. 연나라를 부흥시키기 위해 현자인 곽외를 국정의 스승으로 삼고, 곽외가 추천한 악의를 장군으로 등용하여 국방을 맡겼다. 하루는 소양왕이 곽외에게 물었다.

“어떻게 해야 나라를 빨리 강성하게 만들 수 있겠습니까?”

곽외가 대답하였다.

“나라의 흥성은 인재에 달려있습니다. 그러니 인재를 귀하게 여겨 등용하셔야 합니다. 그래서 군주와 신하가 좋은 관계를 맺으면 그들이 기꺼이 부국강병에 대한 정책을 낼 것입니다. 또한 군주께서는 자신의 이익을 꾀하는 신하를 멀리 하시고 자신을 희생하여 국정을 따르는 이들을 가까이 하셔야 합니다. 다음으로 백성들을 잘 보살피고 즐거움과 고통을 함께 나누어야 합니다. 다시 말해 백성의 어려움을 군주가 책임져야 나라가 비로소 부강해지는 것입니다.”

소양왕이 그 말에 따라 인재를 대우하여 등용하니 천하의 재능 있는 자들이 연나라로 몰려들었다. 얼마 후에 연나라는 유능한 신하와 뛰어난 장수들이 포진하게 되었다. 또한 소양왕은 백성들을 잘 보살폈다. 농지를 개량하여 백성들이 배부르도록 하였고, 흉년이 든 마을은 곧바로 구휼하여 굶주린 백성이 없도록 하였다. 이렇게 정책이 일관되게 시행되자 연나라는 차츰 부강해졌다.

그 무렵 제나라에는 내분이 많았다. 장군 악의가 이를 기회로 제나라 정벌에 나섰다. 제나라는 연나라의 공격에 무참히 무너졌다. 수도 임치(臨淄)가 함락되자 제나라 민왕은 거성으로 도망하였다. 소양왕이 이 보고를 받고 크게 기뻐하였다. 장군 악의는 이후 5년 동안 제나라의 70여개 성을 점령하였다. 한편 제나라 민왕은 다급하여 초(楚)나라에 도움을 요청하였다. 하지만 지원 부대를 이끌고 온 초나라 장수가 오히려 자신이 거성을 차지하기 위해 민왕을 체포하여 성 대들보에 매달았다. 민왕은 그곳에서 3일 굶주리다 비참하게 죽었다. 소양왕의 복수는 이렇게 하여 이루어졌다. 이는 ‘전국책(戰國策)’에 있는 이야기이다.

동고동락(同苦同樂)이란 군주가 정책을 내어 백성들과 괴로움을 함께 하고 즐거움도 함께하여 부강한 나라를 만든다는 뜻이다. 기득권 세력은 모두가 잘 사는 나라를 원치 않는다. 부동산을 가지고 술수를 부리고 교묘히 법망을 피해 자신만의 이득을 취한다. 그래서 백성을 위하는 정책에는 항상 기득권 세력을 제압하는 묘수가 따라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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