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교통대학교 행정학과

올해부터 초등학교 1·2학년 방과 후 영어수업이 금지된다. 이와 함께 누리과정의 유치원·어린이집 영어수업을 금지하겠다고 한다. 금지 이유는 사교육 억제를 목표로 한 선행학습 금지를 들고 있다. 이러한 정책은 그 내면에 교육이나 외국어 교육을 생활이나 의사소통 수단으로 생각하지 않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학자들은 자유로운 외국어 의사소통을 위해서는 약 4천시간 정도 해당 언어에 노출되어야 한다고 한다. 그러나 초등학교 3학년부터 고등학교까지 우리의 공식적 영어 시간은 1천시간도 되지 않는다. 이러하니 10년 공부해도 영어 의사소통이 이루어지지 않고 수포자와 함께 영포자가 늘어나고 있다.

우리 현실에서 영어를 하지 못하면 좋은 학교에 입학할 수 없고, 공직뿐만 아니라 소위 좋은 기업에 취업하는 것을 포기해야 한다. 영어가 중요함을 알고 있으니 경제력과 기회가 있으면 영어 유치원, 영어몰입 사립초등학교를 보내고, 어릴 때부터 영어 학습지를 하고, 초등학교부터 대학 졸업까지 영어 학원에 다닌다. 지난해 4월 말 기준으로 전국 초등학교 6천229개 학교 가운데 1~2학년을 포함한 영어 방과 후 수업을 진행 중인 학교는 76% 수준인 4천739개가 된다. 올해부터 초등학교 1~2학년은 이들 수업을 들을 수 없다.

영어의 필요성과 수요에 의해 2015년 어린이집·유치원 방과 후 특별활동에서 영어를 하는 가구는 응답자의 45.4%, 응답 어린이집의 46.9%라고 한다. 이러한 프로그램을 금지하겠다고 한다. 수요와 필요가 있는 상황에서 정부가 사교육 억제를 이유로 추진하는 영어 수업 금지는 오히려 사교육을 확대하게 될 것이다. 세계 어느 나라 언어 교육 정책에 이러한 규제가 있는지 궁금하다.

외국어 학습은 학습이 교실이라는 공간에서 의식적으로 이루어지기보다 무의식적으로 자연스럽게 이루어지는 놀이나 일상의 자연스러운 상황에서 우수한 언어 학습 능력이 있다고 한다. 우리의 영어 교육이 교실에서 입시 중심으로 이루어졌기 때문에 글로벌 생활의 수단이 되지 못하였다. 우리의 외국어 교육은 그 목표를 입시가 아닌 세계 시민으로의 능력을 기르는 데 두어야지 선행학습 금지 논리로 수업할 것인지 말 것인지를 논의할 일이 아니다.

조기 영어 교육의 효과와 관련해 ‘어릴수록 다른 나라의 말을 잘 배울 수 있다’는 가설은 아직 명확하게 검증되지 않고 있다. 검증되지 않은 가설을 받아들여야 할 것인지 말 것인지는 정부가 아닌 학부모가 결정할 것이다. 정부 정책은 이들 수요를 충족할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 돼야지 기회를 박탈하는 정책이 되어서는 안 된다. 사교육을 억제하기 위한 정책이 오히려 사교육을 확대하는 결과를 가져오는 것은 대표적인 규제 실패정책이다. 실패를 증명하는 정책을 정책이라고 홍보하고 추진하는 것을 볼 때마다 안쓰러울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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