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영철 아동문학가

학기말 시험을 끝내고 성적까지 입력을 시키자 홀가분하다. 앞으로 두 달 동안은 자유라는 생각을 하며 이런저런 계획을 세워본다. 우선 다음 학기를 위한 공부도 해야겠고, 꼭 읽고 싶어 사다가 책상 옆에 쌓아 둔 책들도 정리해야 할 것 같다. 그리고 내년도 책 출간을 위해 그동안 써 놓았던 글을 교정도 보아야 한다. 이것만 다하려 해도 두 달이라는 시간은 그리 길은 시간은 아니다. 그래도 내가 홀가분한 감정을 느끼는 것은 아마 ‘자유’라는 단어가 있기 때문이 아닐까 한다.

아내가 4년 전에 하던 불평을 요사이도 똑같이 한다. “여보, 이제는 좀 여유를 갖고 삽시다. 무엇이 그리 바빠 새벽부터 밤늦도록 쉴 틈이 없소. 남들은 퇴직하면 집안일도 도와주고 요리도 잘한다는데. 나도 당신이 해주는 음식 좀 먹어 봅시다.” 그러면 나는 잠시 있다가 이렇게 대꾸를 한다. “여보, 내가 좋아서 하는 일이요. 누가 시켜서 하는 일이라면 벌써 그만두었을 것이요. 공부하고 가르치는 일은 내가 꼭 하고 싶었던 일이요. 나는 지금이 내가 살아 온 날 중 가장 행복하오. 당신이 나를 좀 도와주시오.”

새벽기도를 가기 위해 일어나 커튼을 걷고 창밖을 내다보았다. 밤새 눈이 와서 세상이 온통 하얗다. 집 앞 가로등 불빛은 아직도 간간이 내리는 눈을 하나하나 비추고 있다. 나에게도 저런 순백의 은혜를 내려주어 덕지덕지 붙어 있는 더러운 죄를 모두 씻어 달라고 간절히 기도해 본다.

선배의 요청으로 신문에 글을 쓴지도 벌써 7년이 넘었다. 내 주변의 소소한 이야기를 주제로 글을 쓰다 보니 가족이나 직장 동료들이 주인공으로 자주 등장했다. 이름을 밝히지 않자 독자 중에는 궁금했는지 그 사람이 도대체 누구냐고 전화 오기도 했고, 신문사 사정으로 내 글이 건너뛰면 무슨 일이 있느냐고 안부 전화도 왔었다. 글을 쉬려고 하니 감사할 분이 많았다. 우선 글 쓰는 재능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린다. 똑같은 사물을 보고도 새롭게 해석하는 능력과 누구라도 쉽게 읽을 수 있는 글 쓰는 재주는 큰 축복이다. 다음은 글을 실어 준 신문사이다. 부끄러운 글을 실어 준 것에 늘 감사할 따름이다. 그러나 아직도 부족한 점이 많기에 이곳저곳을 다니며 글 동냥도 했고, 전문가들에게 좀 더 자연스러운 표현방법을 공부하기도 했다. 언제나 함께 공부하는 마음으로 친절하게 가르쳐준 선배 문우 여러분께 감사드린다.

악보를 보면 수많은 쉼표가 나온다. 간단히 숨을 쉬기 위한 짧은 쉼표도 있고, 때에 따라서는 한 악장이 끝나고 나면 긴 쉼표도 등장한다. 연주자는 작곡가의 의도에 따라 쉬어야 한다. 나에게도 이제 그런 쉼표가 나타났다. 거침없이 연주하던 곡이 이제 서서히 끝나고 있음을 느낀다. 좀 더 세상을 아름답게 볼 수 있는 눈과 진실과 거짓을 분별할 수 있는 지혜가 더 필요하기에 쉬어야겠다. 그동안 부끄러운 글을 재미있게 읽어 주신 독자 여러분께 깊은 감사를 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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