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진명 시인 충북예술고 교사

그리스 신화를 읽다 보면 묘한 착각에 빠집니다. 틀림없이 신들의 이야기인데, 한참 읽다보면 사람들의 이야기와 구별되지 않는 것입니다. 희로애락과 모든 감정이 인간세계와 똑같이 벌어집니다. 그런데도 이야기는 ‘신화’입니다. 이거 이상하지 않은가요? 저만 이상하다고 생각하나요? 왜 이럴까요?

오랜 고민 끝에 저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이건 신들의 이야기가 아니라, 특이한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이다. 그렇다면 그 무렵의 특이한 사람들이란 누구일까요? 한 번 생각해보시기 바랍니다. 생각 없이 남의 글만 따라가다가는 아무것도 얻는 것이 없습니다. 과연 고대사회에서 어떤 존재들이 그런 이야기의 주인공이 됐을까요?

무당입니다. 무당들이 신을 빙자해 자신들의 이야기를 한 것이 신화로 정착한 것입니다. 무당들은 특별한 능력이 있는 사람들입니다. 그렇지만 그것을 입증해야 합니다. 그래야 믿거든요. 그렇다고 날이면 날마다 그런 능력이 나타나는 것이 아닙니다. 어떤 때는 되고 어떤 때는 안 되죠. 그러면 안 되는 순간에 손님이 오면 어떻게 될까요? 그냥 돌려보내야 할까요?

바로 이런 순간에 이용하는 재주가 있습니다. 딴 게 아니로 마술입니다. 그래서 저는 마술사의 원조가 무당이라고 생각합니다. 무당들이 엄청나게 큰 돼지를 통째로 창에 찍어서 거꾸로 세우는 거라든지, 병 주둥이 위에 술잔을 세 개나 켜켜이 쌓아올리는 거라든지 하는 것들이 바로 그런 눈속임이라고 생각합니다.

보통 사람들은 해내기 힘든 재주죠. 그렇지만 부단히 연습하면 할 수 있는 일입니다. 그런 재주들을 많이 연마해두었다가 단골이 찾아오면 자신의 권위를 세우는 방편으로 이용하는 것입니다. 이런 능력은 어수룩한 보통사람에게는 신이 내려준 능력으로 보이고, 그런 능력을 보이는 무당들은 신의 대리자라고 믿게 됩니다. 그래서 무당의 말은 사람들에게 신의 말씀으로 내려오는 것입니다.

바로 이런 무당들의 행동이 몇 사람의 입을 거쳐 돌아다니면 바로 신화가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동서양 모두 이런 신화의 이야기가 아주 많습니다. 그런데 그리스 신화가 특이한 것은, 다른 문명권의 신화가 낱낱이 독립된 형태로 존재하는 것과 달리, 신들의 계보이며 서열이며 공간배경까지 완벽한 조화와 짜임새를 갖추었다는 것입니다. 올림포스 산 정상을 시작으로 그 주변의 모든 지역에 각기 한 신씩 배치함으로써 그 자체로 완벽한 한 사회를 이룩했습니다. 비로 이것이 다른 지역의 신화와 구별되는 점입니다. 그래서 이야기에 위계질서가 있기 때문에 정말 신들의 이야기라고 착각하게 됩니다.

그리스 신화의 이야기는 인류에게 여러 모로 모델이 됐습니다. 그래서 이야기 감으로도 훌륭하고, 인류 문명의 틀을 지은 뿌리로서도 훌륭합니다. 그래서 그것을 모르고서는 인간을 제대로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이 됐습니다. 그래서 저도 젊을 적에 그리스 신화를 읽었는데, 바로 이 책이었습니다. 그런데 너무 어럽고 길게 설명을 해놔서 넌더리를 내며 읽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래서 이 책을 반드시 소개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요즘은 그리스 신화에 대해서 소개한 좋고도 쉬운 책이 많이 나왔습니다. 이윤기의 책이 한 때 베스트 셀러가 된 것도 이런 욕구를 반영하는 현상이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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