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영철 아동문학가

오래 산다는 것이 꼭 축복은 아닌 것 같다. 각종 언론에서 날마다 쏟아내는 기사를 읽다보면 전에 듣지도 사용하지도 못한 단어들이 자주 등장한다. ‘황혼 이혼, 자산 이혼, 졸혼, 고독사’ 등 호기심에 인터넷을 찾아보고서야 그 의미를 알고는 머리를 끄덕인다. ‘몇 년 사이에 세상 참 많이 변했다’는 말이 저절로 나온다.

사는 집이 언덕 위에 있어 햇볕도 잘 들고, 골목이 훤히 보여 좋다. 시간이 있을 때 차 한 잔 들고 밖을 내다보고 있노라면 잠시 동안이지만 폐지를 수거하는 노인들이 여러 명 지나간다. 그들은 약속이나 한 것처럼 꾸부정한 허리에 조그마한 손수레를 끌고는 혹시 어느 집 문 앞에 종이상자나 빈병이 나와 있나 두리번거린다. 옛날 같으면 집에서 어른 대접 받으며 평안한 노후를 즐길 분들이다. 과학이 발달하여 인간의 수명은 길어졌는데 국가나 개인이나 노후 준비가 부족해 사시사철을 저렇게 골목을 누비고 다닌다.

품안에 자식이라고 장가간 아들이 길 건너 아파트에 살지만 얼굴 보기가 힘들다. 며느리도 처음에는 전화로 안부를 묻더니 그 시효가 3개월짜리인지 이제는 무소식이다. 하기야 우리 때처럼 전업주부가 아니요 각자 직장생활로 그러려니 하지만 시아버지로서 마음 한구석이 서운한 것은 사실이다.

일전에 아들이 퇴근하면서 집에 들렀다. 저녁밥을 함께 먹자고 했더니 결혼 후 체중이 늘어 다이어트 중이라며 과일 한 쪽만 먹는다. 그 말에 아들을 자세히 살펴보았다. 얼굴이 보기 좋게 통통하다. 결혼생활이 좋다는 표시 일게다. 괜히 부모만 걱정을 한 것 같다. 아내는 오랜만에 본 아들의 결혼생활이 궁금했는지 여러 질문이 줄을 서 있다.

아내는 요사이 새로운 아파트만 생긴다면 열심히 쫓아다닌다. 내 생각에는 우리 집보다는 아들네 집을 염두 해서 그러는 것 같다. 아니나 다를까. 아내는 아들에게 새로운 아파트 모델하우스를 이곳저곳 알려주며 시간이 되면 며느리와 함께 가 보라고 한다. 그러면서 슬며시 저축한 돈이 얼마냐고 묻는다.

“아니 너는 어째 날마다 그 돈만 있냐? 둘이 벌면 그것보다는 더 많이 저축을 해야지.”하며 빠른 두뇌로 대충 계산한 것 같다. “어머니, 우리는 월급을 각자 관리해요. 처음부터 그러기로 했어요.” “뭐야? 그게 말이 되니. 결혼 했으면 부부 중 한사람만 주머니를 차야지 각각 찬다고? 그게 무슨 결혼생활이냐?” 하며 기가 찬지 한동안 아들을 쳐다본다.

“여보, 그게 요새 젊은이들 풍조라고 하오. ‘더치페이 부부’라고 하는데 생활비만 공통으로 내어 놓고 돈 관리는 각자 한다오. 아마 월급도 얼마인지 서로 모를 거요.” 라고 설명을 해주자 아내는 도저히 이해가 안 된다는 표정이다. 결혼 후 지금까지 생활비를 나에게 타 쓰던 아내의 입장에서 보면 그럴 것이다. 아내는 가끔 나에게 ‘돈 걱정 없이 생활하게 해 주어서 고맙다’ 고 했지만 그것은 아내 스스로 위로의 말이 아닐까 한다. 아내도 남들처럼 돈도 굴려보고 싶었고, 자기 계획대로 저축을 하고 싶었을 텐데… 그런 재미를 모두 내가 빼앗아 버린 셈이다. 아들 때문에 아내에게 미안한 일 또 하나를 발견했다. “여보, 미안하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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