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영철 아동문학가

일주일에 한 번씩 만나는 문우들이 있다. 서로 작품을 발표도 하고 원로작가로부터 지도도 받는다. 11월에는 야외수업을 하기로 하고 문우들과 함께 장소를 물색했다. 이곳저곳을 상의하다가 그런대로 가까운 거리에 있는 속리산으로 정했다. 마침 뉴스에서도 우리가 속리산을 가기로 정한 날이 속리산 단풍의 절정이라니 이런 행운이 어디 있을까! 내가 갈 때는 속리산의 아름다운 단풍은 이미 저만치 지나가고 원색의 등산복 단풍만 실컷 보다가 오곤 했다.

막새 바람은 속리산을 아름답게 변신시켰다. 언제 저런 색색의 옷을 준비했는지 신기만 하다. 멀리서 보면 온 산이 붉은 저고리를 입은 여인 같지만 가까이서 보면 알록달록 다양한 색들이 각자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산모롱이를 막 돌자 맑은 호수 속 또 하나의 속리산이 우리를 반긴다. “아! 저기가 바로 속리인가?”라고 생각하니 지금까지 내 몸에 덕지덕지 붙어 있는 걱정과 시름을 내려놓고 그대로 호수 속으로 ‘풍덩’ 빠지고 싶다.

물에 떠 있는 고목 위에는 남생이 가족이 앉아서 한가롭게 일광욕을 즐기고 있다. 관광객들은 신기하다며 환성도 지르고 사진도 찍지만, 그들은 아랑곳하지 않는다. 옴살 맞은 가시버시 옆에 바싹 붙어 있는 자식들은 나름대로 평안을 누리고 있는 듯 지그시 눈을 감고 있다. 누군가가 과자 부스러기를 던져 주지만 그들은 꼼짝하지 않는다. 다만 호수 가에서 이미 학습효과를 익힌 이름 모를 물고기들만 이리저리 몰려다니며 과자 먹기에 바쁘다.

뒤에서 갑자기 거친 숨소리가 들리는가 싶더니 한 무리의 사람들이 ‘휙’하고 지나간다. 옷 모양새를 보니 속리산 등반을 목적으로 온 사람들이다. 나도 전에는 저 무리에 끼어 속리산을 오른 적이 있다. 오직 목표를 향해 오르고 오르던 길. 오르고 나면 이루었다는 성취감과 새로운 목표를 세우기도 했고, 때로는 나도 모르는 허탈감을 안고 산에서 내려오기도 했다. 그때 함께 했던 사람들은 지금 어디에 있는지… 영원히 내 곁을 떠난 사람도 있고, 무슨 연유인지 관계가 소원해진 사람도 있다. 모두가 부질없는 일이라고 생각을 하면서도 지금 걸어가는 길에서 그들의 체취를 맡아 본다.  

문우들과 함께 벤치에 앉아 수필 한 편을 읽고 각자의 느낌을 이야기했다. 갑자기 한 분이 분위기에 취해 노래를 부르기 시작한다. 지나가던 등산객들이 서서 노래를 듣고는 손뼉을 치며 기뻐한다. 이번에는 한 분이 더 합세해 이중창으로 노래를 하는데 그 화음이 천상의 소리다. 단풍도 색색의 조화가 있어야 아름답듯이 노래도 화음이 있어야 아름답다. 그러고 보면 인간사도 매한가지이다. 거목이 있는가 하면 보드기도 있고, 잘생긴 사람도 있으면 좀 못생긴 사람도 있어야 조화로운 세상이 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하산 길에 커피 한잔을 마신다. 커피 향속에 가을 냄새가 잔뜩 배어 있다. 아니 아름다운 단풍이 커피 속에 그대로 있는지도 모른다. 오늘 함께한 문우들의 따뜻한 마음이 커피를 통해 나의 가슴에 시나브로 전해 온다. 아! 행복이 이런 건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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