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주해피마인드 아동가족 상담센터 소장

나는 새로운 장소를 갈 때면 시간을 넉넉히 준비하는 버릇이 있다. 강의나 프로그램 진행을 하기 위해 새로운 곳을 찾아가는 날은 일찍 집을 나선다. 처음 가는 곳, 그곳을 상상하며 운전석에 앉으면 절로 콧노래가 나온다. 나는 내비게이션 사용을 즐겨하지 않는다. 특히 처음 가는 장소를 찾아갈 때는 더욱 내비게이션 사용을 자제한다. 오로지 나의 방향 감각을 신뢰하며 운전을 하고자 한다. 그래서인지 백발백중, 길을 잘못 들어 헤매는 경우가 다반사다. 다행스럽게도 지독하게 길을 헤매어 늦게 도착하기도 했지만, 결국 길은 하나이고 그 길들은 서로 연결되어 있기 마련이기에 목적지에 도착한다는 것이다. 다만 시간이 지체될 뿐. 그 낭패를 기억하는 시간, 내게 헤맬 자유를 주는 한 시간 일찍 출발하는 습관은 그렇게 생겨났다.

나는 유독 길을 좋아했다. 미로 같은 골목길, 산길로 이어지는 숲길, 뻥뻥 달릴 수 있는 신작로길, 그리고 강을 따라 이어진 강변도로, 눈이 시린 가을 하늘과 수미쌍관을 이루는 바다를 끼고 도는 해변 도로 등 세상의 길을 두루두루 되도록 많이 걷거나 달려 보고 싶다.

자동차를 운전하면서 길을 만나는 것도 좋지만, 천천히 걸으며 길을 만나는 것을 더 좋아한다. 쉬엄쉬엄 아무런 생각 없이 걷으며 걸을 때 몸에서 작은 기쁨들이 송글 송글한 땀으로 흘러나오는 그 순간이 너무도 좋다.

내가 걸었던 최고의 길은 화엄사 가는 길이다. 화엄사 바로 아래에는 ‘황전리’라는 동네가 있었다. 그 동네에는 친구가 살고 있었다. 중학교 3학년을 함께 보낸 그 친구의 이름은 희자다. 카리스마가 작렬이었던 그 친구는 옆 반 반장이었다. 그 친구와 나의 공통점은 새로운 곳으로 가기 위해 공부를 하는 것이었으며, 우린 둘 다 지독하게 사춘기를 일찍 경험했다. 그래서 그런지 세상을 다 아는 듯한 말투로 읽은 책들에 대해 말하며 놀았다. 학교가 끝나면 나는 희자가 사는 ‘황전리’까지 같이 하교를 했다. 희자의 집까지 두 시간가량을 걸어야 했다. 친구의 집에 도착하면 친구가 건네는 물 한잔을 마시고 다시 집으로 오는 버스를 타기 위해 정류장에 서 있곤 했다. 오지 않은 버스를 기다리며 어둑어둑 지는 노을을 바라보며 알 수 없는 미래 우리는 얼마나 많이 두려워했는지. 그때 우리가 나누었던 헤아릴 수도 없는 이야기들은 어디로 가 있을까? 늘 궁금하다.

걸어서 퇴근하면서 혹은 출근하면서 새로운 길을 찾고 새롭게 만나는 골목에서 나는 여러 가지 것들을 만난다. 어떤 사람들이 살고 있을까 싶은 예쁜 집, 작은 상점, 그리고 담벼락에 피어있는 이름을 알 수 없는 꽃들, 길고양이들, 어느 집에서 들려오는 고함소리, 텔레비전 소리. 이상하게 골목길에서 만나는 풍경들은 나에게는 훈훈한 안정감을 준다. 우리가 하루를 사는 이유는 아마도 ‘나’ 혼자만이 살아가는 세상이 아니라는 사실을, 함께 누군가와 지속 가능한 친밀감을 나눌 수기에 오늘의 ‘나’의 일상이 의미 있지 않을까 싶다. 서로가 더 나눌 수 없다면, 서로를 더 깊이 연결하지 않는다면, 그리고 기꺼이 서로에게 흘러가지 않는다면 그 길은 분명 꽃길이 될 수는 없을 것이다. 서로 돌보지 않고서야 어떻게 꽃길이 펼쳐지겠는가? 각자가 걷는 그 길이 서로에게 통하기를, 바쁘게 가다가도 멈추며 서로에게 물을 줄 수 있기를, 새로운 길을 찾아 떠나는 이에게도 다시 돌아오는 이에게도 그 길이 꽃길이기를.

SNS 기사보내기
기사제보
저작권자 © 충청매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