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경회 청주시 청원구 건축과 주무관

나의 이기심 지수가 끝없이 높아지는 만큼 상대는 한줄기 빛도 없는 나락의 굴레로 떨어져갈 수 있음을 생각해 본 적이 있는가? 너보다는 나의 이익을 챙기고, 너희보다는 우리가 더 우위에 서는 것이 당연한 줄 알고 살아오고 있는 것이 우리들의 자화상이다.

우리는 늘 그러했듯이 내일도 갈등의 순간이 닥칠 때마다 나보다 상대의 입장에서 한 발짝 물러나 상황을 살피고 좀 더 나은 대안은 있는지 살펴볼 정신적 여유 없이 앞만 쳐다보고 뛰고 있을게 뻔하다.

이렇게 상대에게 비수를 겨눌 준비만 하면서 사람냄새 나는 순수와 온정을 찾을 여유가 없는 나는 시인 류시화 님의 ‘새는 날아가면서 뒤돌아보지 않는다’를 통해 너무나 큰 관점의 전환을 체험하게 됐다.

인도의 어느 명상센터에 봉사를 하고 있는 한 여인이 승려와 대화중 찻잔에 파리가 빠지자 약간의 찌푸림은 있었으나 환경운동가이자 봉사자인 입장에서 “노 프라블럼”이라고 했지만 승려는 조용히 찻잔 속의 파리를 건져서 나갔다가 돌아와서는 “파리는 이제 괜찮을 겁니다”라고 했다.

승려는 그 파리를 건져서 나뭇잎에 올려놓고 바람과 햇살로 날개가 말라서 날아가는 것을 보고서야 들어와 그 여인에게 그렇게 파리가 살아서 날아갔음을 알린 것이다.

‘노 프라블럼’의 관점이 그 여인에게는 자신이었으나 찻잔 속의 파리에게는 생사가 달린 기로의 상황이므로 ‘노 프라블럼’이 아니었음을 스님은 알고 있었고 ‘노 프라블럼’의 관점을 나 아닌 타인이라는 존재로 전환하지 않는다면 그것이야말로 ‘빅 프라블럼’이라는 것이다.

나는 오늘 내 찻잔에 빠진 하루살이를 보면서 ‘노 프라블럼’의 관점을 하루살이에게로 전환할 수 있는 특별한 경험의 순간이 부여됐고,  이 우연의 일치로 주어진 상황을 진지하게 체험하고 세혼(洗魂)할 수 있었다.

늦가을 오후 책상에 놓아둔 머그컵에 언제 빠졌을지 모를 미동 없는 하루살이를 보고 스마트폰을 꺼냄과 동시에 하루살이를 건져 휴지위에 올려두고 입 바람을 솔솔 불어준다.

이럴 수가 있을까! 내 스마트폰에 녹화되고 있는 ‘노 프라블럼’의 진리를 잠시 후 살아서 날아가는 하루살이를 통해 적확(的確)하고 생생하게 보면서 나는 전율하고 말았다.

이 책을 통해 비정한 사내로서 살아갈 뻔한 미래 예단과 함께 반성의 시간을 얻었음에 감사하면서 앞으로의 삶속에서 ‘노 프라블럼’의 선택에 서 있을 나 자신과 아이들에게 휴머니즘이 살아있는 따듯한 세상을 안겨주기 위해 나와 세상에 외쳐본다.

‘노 프라블럼’의 관점을 그 상황의 결과가 나와 우리에게 치명적이 아니라는 가정 아래서 가끔은 자신의 동반자인 가족과 동료를 기준으로 전환하면서 살아가보는 것이 어떠하겠는가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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