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청호 칼럼] 은행나무와 가을의 산책
[신청호 칼럼] 은행나무와 가을의 산책
  • 충청매일
  • 승인 2017.11.08 19: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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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보건과학대학교 교수

사계절이 뚜렷하던 예전과 달리 가을과 겨울이 구분이 어려운 시절이다. 절기상으로 겨울의 시작을 알리는 입동이 지났다. 입동은 겨울이 들어서는 날이라는 뜻으로 절기상 이날부터 겨울의 시작점이 된다. 입동은 겨울이 들어서는 날이라는 뜻으로 절기상 이날부터 겨울의 시작점이 된다. 입춘, 입하, 입추와 같은 계절의 시작을 알리는 4립의 하나이다. 양력으로는 11월 7~8일에 든다. 우리나라에서는 입동을 특별히 명절로 생각하지는 않지만, 겨울로 들어서는 날로 여겼기 때문에 사람들은 겨울채비를 하기 시작한다.

나는 이맘때에 노랗게 물들여진 보건과학대 가는 은행나무 길을 찬찬히 걸어 본다. 이것이 부족해 몇 백 년이 지난 은행나무가 있는 중앙 공원의 뜰을 거닐고, 괴산 문광 저수지 은행나무길, 진천 길상사 앞 은행나무거리, 그리고 공군사관학교 입구의 길을 걸어보곤 한다.

한해 두해 지날 때 마다 굵어져가는 나무와 가지에서 생성되어 자라다가 나중에 떨어지는 잎새들!  길가에 쌓여가는 낙엽들이 땅바닥에 나 뒹구는 모습을 보며 ‘나도 시간이 지나면 낙엽처럼 버려지겠지’라고 읊조리며 지내온 세월을 반추해 본다. 사람들은 지는 낙엽을 보고 새로움을 느낄까? 시간을 마음에 두지 않고 무진장인양 무심코 지나쳐버린다. 늘상 시간은 그대로라고 하지만 그 시간 속에다 무언가를 장식하며 변화를 추구해 가는 자들이 인간임은 틀림없다.

하지만 장수하기로 알려진 중앙공원의 은행나무는 한자리에서 세월을 지키는 버팀 목이 되어왔으며 전쟁을 여러 번 겪었고, 나들이 손님들의 애환을 함께하며 지내 온 은행나무이다.

만고풍상을 겪으면서 지내온 세월의 부침 속에 몇 백 년을 지내온 이 은행나무는 오늘도 말이 없이 생존을 위해 겨울을 지내기 위한 잎을 떨구며 몇 개 남지 않은 젖은 잎들을 가지고 따뜻한 햇볕에 의존하며 가지를 높이 치켜들면서 몸을 말리며 추위를 이겨내는 모습이 마치 우리네 조상들의 가증스러운 삶의 모습이란 생각이 든다.

바쁜 일상을 잠시 접어두고 노랗게 물들어 떨어진 낙엽 길을 거닐며 사색에 잠기는 마음의 여유를 가져본다. 유교 경전 중의 하나인 대학에 ‘심불재언(心不在焉)이면, 시이불견(視而不見) 청이불문(廳而不聞) 식이부지미(食而不知味)라'는 말이 있지 않은가? ‘마음이 있지 아니하면 보아도 보이지 않고 들어도 들리지 않으며 음식을 먹어도 그 맛을 모른다’는 말이 생각난다. 신진대사를 위해 소중히 제몫을 하고 떨어진 노란 잎에서 조선시대 일본과의 전쟁으로 혼란했던 청주의 모습이 보인다.

새삼 벌거벗은 은행나무에서 정다운 취향이 느껴진다. 그냥 지나치던 은행나무 길에서 깊어져간 가을의 잔상이 눈에 어린다. 은행 나뭇길 걷는 명상을 통한 오늘의 잔상 역시 내일로 연장되어 더욱 좋아질 수 있다면, 그것 또한 성공이기도 하다.

성공이란 어제보다 좀 더 나아진 오늘이다. 지난날 깨닫지 못했던 걸 오늘 지금 알게 되었다면 그것 역시 성공 중의 성공이다. 마음을 잘 다스리는 평화로운 사람은 한잎 두잎 떨어지는 낙엽을 보고도 미래를 내다보는 혜안이 있다. 오늘의 어수선한 시대의 조류를 잘 극복하는 우리 민족은 혜안이 있다고 은행나무는 말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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