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진명 시인 충북예술고 교사

진정성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능력 여하를 떠나서 자신이 하는 일에 완전히 빠져서 할 수 있는 만큼의 노력을 다하는 것을 말합니다. 그런 점에서 학자들에게 진정성은 가장 중요한 요인입니다. 옛 그림을 연구한다고 할 때의 진정성이란 무엇일까요? 아마도 그림에 나타나는 현상들의 배후를 알아내는 것일 것입니다. 특히 풍속화의 경우 그 시대를 온전히 되살리지 않으면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 많습니다. 게다가 그 그림을 그린 사람의 손길이나 솜씨의 특성을 파악하려면 그 그림속의 동작이나 상황을 정확히 판단할 근거가 필요합니다. 예컨대 활쏘기의 그림이 나온다면 그 활쏘기가 어떤 상황에서 연출된 것인가를 알아보는 능력이 있어야 하고, 그러자면 전통 활쏘기를 완전히 배우지는 않아도 그런 정황을 파악할 만큼의 지식은 있어야 합니다.

씨름 장면을 그린 그림을 마주치면 그게 왼씨름이냐 오른씨름이냐 통씨름이냐 바씨름이냐를 먼저 알아야 하고, 그 각기 씨름의 특성이 지닌 바와 힘쓰는 원리 정도를 알아야 그 그림의 정황을 정확히 파악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풍속화 그림은 정말 살얼음 딛듯이 살펴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그 그림이 그려진 시기의 사회 문화 현상을 샅샅이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그림 공부는 끝이 없습니다.

제목에도 나오지만 조선시대의 생활 양식을 강하게 규정한 것이 음양오행입니다. '자연의 음양오행에 기초한 우주관, 인생관'이라는 부제에서 보듯이 오주석도 조선시대의 그림을 이해하기 위하여 음양오행을 공부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오늘날 우리에게 음양오행이란 사주나 풍수지리에서 보는 미신 정도의 취급을 받는 물건입니다. 미신으로 매도된 물건을 학자가 끄집어내어 그것을 통해 다시 그림을 들여다본다는 것은, 정말 많은 고민을 떠안게 되는 것이고, 또 세상을 보는 눈을 바꾸어야 한다는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학자로서 그러기는 참 쉽지 않습니다. 자신이 제도권에서 배운 것으로 그냥 보는 것이 편하죠. 그런데도 그런 불편한 길을 감수하고 가시밭길로 들어선다는 것은 학자 이전에 구도자의 정신입니다. 구도자들의 길은 다른 사람들이 갈 수 있는 새로운 길을 여는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학자의 길과 구도자의 길이 겹친다는 것은 본인에게는 힘든 일이겠지만, 그것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눈에는 희망으로 보이기도 합니다. 학자의 책에서 그런 빛이 나오는 것은 정말 쉬운 일이 아닌데, 이 책에서는 그런 빛이 나옵니다.

오주석의 이 책을 읽다 보면 오주석이란 사람이 정말 자신이 하는 일에 즐거워했고 호기심을 해결하는 일에 두려움 없이 나서서 배웠구나 하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그만큼 그림을 보는 안목이 대단합니다. 일설에 의하면 조선시대 문인들의 그림을 이해하려고 주역 공부까지 했다고 하니 그 열정만큼은 높이 살 일입니다. 그렇지만 재주꾼은 하늘이 일찍 데려가는지, 아니면 천기누설을 많이 한 자를 일쩍 거두어가는 것이 하늘의 뜻인지, 안타깝게도 일찍 타계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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