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영철 아동문학가

학교로 가는 길 단풍이 아름답다. 빨강 신호등 앞에서 잠시 단풍구경에 빠져 본다. 세월의 흐름은 올해도 가로수를 따라 지나간 것 같다. 다음 차례는 아마 을씨년스러운 가을비나 옷깃을 파고드는 차가운 바람 일게다. 따스한 차 안인데도 나도 모르게 갑자기 몸이 오싹하며 한기를 느낀다. 그 사이 바람 한 줄기가 가로수를 지나갔는지 낙엽 몇 장이 차창 앞으로 빙그르르 돌며 떨어진다.

늦더위에 엉덩이가 물러 한동안 고생했었다. 다행히 의사 선생의 처방이 잘 되어 무른 곳이 이제는 뽀송뽀송하다. 올여름은 이렇게 지나가나 했는데 갑자기 무릎이며 팔 이곳저곳이 가렵다. 몇 번 손으로 긁었더니 주위가 발개지면서 조그마한 돌기가 생겼다. 우선 집에 있는 연고를 가려운 부위에 발랐다. 처음에는 가라앉는듯하여 별로 신경을 안 썼더니 밤이 되자 온몸이 가려워 자다 말고 일어나 몇 번을 긁었던 것 같다. 아침에 몸을 살펴보고는 깜짝 놀랐다. 팔이며 다리가 손톱자국으로 상처투성이다. 아내는 그런 나를 걱정스럽게 바라보며 “여보, 아무래도 다시 병원을 다시 다녀오셔야 할 것 같아요. 환절기라 몸이 건조해서 그래요. 나도 가끔 몸이 가렵기는 한데, 당신은 너무 심해요. 세월이 촉촉하던 피부를 이렇게 건조하게 했네요”한다.

100세 시대이니 60세 노인은 노인도 아니다. 한 달에 한 번씩 만나는 동문회에 참석해 보면 나는 아직도 말석이다. 선배들은 얼마나 건강한지 그 많은 술을 순식간에 마시곤 술을 더 찾는다. 그들의 말을 빌리면 아직도 자기들은 청춘인데 사람들이 자꾸 노인이라고 한다며 서운해 한다. 그러나 그 말은 틀린 말이다. 왜냐하면, 선배들의 늘어진 피부며, 얼굴의 검버섯은 이미 그들이 노인이라고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날이 쌀쌀해 옥상에 둔 화분이 생각나 올라가 봤다. 머루 나무는 벌써 나뭇잎이 다 떨어지고 앙상한 가지만 남아 있다. 푸르른 화분들도 이제는 날씨 때문인지 모두 힘이 없어 보인다. 한 모퉁이에 50세가 넘은 귤나무가 나를 애처롭게 바라본다. 얼른 가서 잎을 살펴보니 모두가 까맣다. “내가 그동안 너를 너무 소홀히 대했구나”하며 물로 열심히 씻어 보았지만 잘 씻기지 않는다.

병원을 가다가 병든 귤나무가 생각나서 화원에 들렀다. 귤나무 증세를 이야기하니 주인은 귤나무를 가지치기하고 밑거름을 충분히 주어 나무의 건강을 유지하라고 했다. “나무도 사람하고 같아요. 환경도 좋아야 하고, 충분한 양분을 주어야 나무가 튼튼해지는 거죠. 제가 보기에는 물주기가 잘못되었어요. 물을 줄 때마다 잎에도 물을 충분히 뿌렸어야 해요, 씻어 주지 않으니 먼지가 잎에 쌓여 잎이 까맣게 된 거죠. 나무도 일종의 피부병에 걸렸다고 보면 됩니다.”

저녁때 옥상에 올라 귤나무를 보니 미안하기도 하고 불쌍하다. 내 딴에는 옥상에는 볕도 좋고 바람 잘 불어 좋을 줄 알았다. 그런데 내 관심이 부족해 결국 귤나무도 피부병에 병에 걸렸다고 생각하니 어찌 미안하지 않겠는가! 그런 나를 보면서 귤나무도 한마디 한다. “너도 아프냐? 나도 아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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