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영철 아동문학가

추석이 되어 교회 성도 몇몇이 인사차 원로목사댁을 방문했다. 우선 건강해 보이시니 좋다. 아직도 꿈을 이루기 위해 노력하기에 건강하지 않나 생각해 본다. 함께 방문한 사람들과 음료수를 마시며 이야기를 하는데 유독 한 분만이 대화의 주도권을 잡고는 놓지 않는다. 저러다 말겠지 했지만 우리가 그 자리를 일어설 때까지 그분의 말은 끝나지 않았다. 나이가 들면 먹는 것, 말하는 것을 줄이라던 어느 선배의 말이 이해가 되었다.

젊어서 공부를 한다고 잠시 암자 생활을 한 적이 있다. 짧은 시간에 많은 공부를 하려는 나의 욕심과 내가 어떤 사람인가를 관찰하고자 하는 스님의 마음이 합쳐져 거의 한 달 이상을 말 한마디 없이 지냈다. 공양 시간도 목탁으로 알려 주었고, 스님이나 나나 일에 몰두하니 특별히 이야기 할 필요도 없었다. 처음에는 입이 근질거려 헛기침도 여러 번 해 보았으나 이것도 잠시였다. 왜냐하면, 자연의 소리에 점차 순응되는 나를 발견했기 때문이다.

그 때 나는 계곡물 소리가 수시로 바뀌는 것을 알았고, 창문 밖으로 살며시 지나가는 산짐승의 발소리도 들을 수 있었다. 그리고 우리가 얼마나 쓸데없는 말로 시간을 낭비하는 지도 알았다. 암자를 떠나 다시 세상으로 돌아가면 많은 말보다는 많은 생각을 하면서 살고자 다짐도 했다. 그러나 세상은 그런 사람을 요구하지 않았다. 말 잘하는 사람, 유머 있는 사람, 논리적인 사람을 요구했다. 나도 세상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결국 많은 생각보다는 많은 말을 하면서 살았다. 그래서일까? 면접시험을 마치니 면접관이 웃으며 한 마디 한다. “자네 말 참 잘하네. 합격하면 농민교육을 담당했으면 좋겠네.”

성경에 보면 솔로몬이 왕이 되어 산당에 많은 제물을 바치며 제사를 지냈다. 그날 밤 하나님께서 솔로몬 앞에 나타났다. “그래 내가 너에게 무엇을 줄까?”하고 묻자 솔로몬은 “하나님 저에게 듣는 마음을 주시어 백성을 재판할 때 선악을 분별할 수 있게 하옵소서”라고 했다. 여기서 듣는 마음은 총명한 지혜를 말하니 곧, 잘 듣는 것이 바로 지혜라는 것이다. 남 앞에서 말을 많이 하는 사람들 목사, 선생, 정치인, 법조인 등에게 꼭 필요한 말이 아닌가 생각해 본다. 나 역시 예외는 아니다. 나의 언행이 학생에게 도움이 되지 못할망정 이중인격자로 또는 언행 불일치 자로 인식된다면 굳이 강단에 설 필요가 없지 않나 생각한다.

마침 어제 인터넷을 보다가 우연히 ‘말 잘하는 노하우’라는 글을 읽었다. 그런데 신기한 것은 말 잘하는 노하우의 첫 번째 항목은 남의 말을 잘 들으라는 것이었다. 그 뿐만이 아니다. ‘남이 말할 때는 잘 듣고 그 말이 다 끝난 후에 이야기하라’는 말도 있다. 그러니 말을 잘하려면 우선 남의 말을 잘 들어야 한다. 조선 후기 문인 성대중이 쓴 ‘잡록잡인’이라는 책에 “내면의 수양이 부족한 자는 말이 번잡하며 마음에 주관이 없는 자는 말이 거칠다”라고 썼다. 말 한 마디 한 마디가 곧 사람의 품성(品性)이라는 뜻이 아닐까? 그래서 품(品)이라는 한자에 입구(ㅁ) 자가 세 개나 들어가 있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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