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주해피마인드 아동가족 상담센터 소장

     
 

여성들에게 공간은 중요하다. 공간에 대한 여성들의 관심은 남성보다 높다. 가정폭력에 시달린 여성이 집을 떠나지 못한 이유가 자신이 키운 베란다의 화분들 때문이라는 말을 들으며 나는 여성들이 갖는 공간에 대한 집착이 어느 수준을 넘어서 있다는 것을 알았다.

사람들은 자신을 안전하게 드러내놓고 편안하게 쉴 수 있는 곳. 잠시라도 ‘나’를 ‘나’인 채 놓아둘 수 있는 곳을 간절하게 원한다.

십 년 자취 생활 끝에 나는 결혼을 했었다. 혼자 쓰던 공간을 누구와 같이 써야 하는 일이 생긴 것이다. 사랑하니까, 함께한다는 것의 소중함, 남편이 오기 전에 공간은 내가 전유할 수 있으니까 괜찮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였다. 아이가 생기고 나서 나만의 공간은 마음속에서도 물리적으로도 잊혀져갔다. 나만의 공간을 갖기보다는 먼저 아이들 방부터 하나씩 내주어야 했다.

남편은 이런 나의 불평에 이렇게 말했다. “이 집이 당신 거잖아. 당신, 혼자 집에 있잖아.” 남편의 말처럼 내게 공간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주방이라는 공간, 거실이라는 공간, 안방이라는 공간. 그러나 이러한 공간은 나만의 공간은 아니었다. 가족들 모두에게 늘 열려있는 공간이었다. 나만의 것들로 채울 수는 있지만 유지될 수는 없는 공간이었다.

남성들은 여성들이 말이 많다고 한다. 일상적인 이야기들을 그렇게 오랜 시간 이야기할 수 있는 여성들을 대단하다고 마치 여성들만 그런 것처럼 성별 차이로 말한다.

자신이 원하는 방식으로 살아가지 못하는 사람들은 누군가를 향해서( 그러나 누군가는 중요하지 않다) 크게 든 작게 든 이야기를 한다. 중계하듯 말이다. 여성들에게는 여성 자신의 삶을 주체적으로 살아갈 수 없게 만든 문화가 있었다. 왜 엄마들이 아빠들에 비해 말이 많았을까? 여성들은 자신이 하는 일에 대해 자부심이나 성취감을 느끼기 힘들었다.

소소한 일상을 지탱해주는 역할을 끝없이 되풀이해야 했기에 거기에 어떤 가치를 쳐주지도, 스스로가 갖기도 어려웠다. 가사노동은 하지 않으면 불편함이 금방 표 나지만, 청소를 열심히 한다고 해서 그것도 매일 한다고 해서 거기에 대한 보상을 받거나 칭찬을 받지는 않는다.

퇴근 시간이 다가오면 나는 또 다른 직장 곧 가정으로 출근을 하는 심정이었다. 지친 노동을 끝내고 나서도 엄마이고 아내이기에 집으로 돌아가 가족들에게 따뜻한 저녁을 챙겨야 한다고 생각했다.

아이들이 정신없이 어질러 둔 흔적을 사랑스러운 마음으로, 쑥대밭이 되어있는 집안을 치워야하며, 나보다 더 늦게 퇴근하는 남편이 오기 전에 좀 더 쾌적한 환경을 제공해야 한다는 것은 좋은 아내의 정석이었다, 이런 나의 노동을 누군가가 경이롭다고 했다.

나는 ‘경이롭다’는 말을 듣는 순간 화가 치밀었다. ‘그 경이로운 노동, 너나 하시지요’ 할 수만 있다면 누구에게든 반납하고 싶었다, 그러나 여성들이 하는 이중의 노동은 혼자서는 깨기 어려운 프레임이 있다. 가족관계는 사랑이라는 감정이 들어가 있어, 자신이 조금 더 움직이면 온 가족이 즐겁고 편안할 텐데 혹시 자신의 이기심으로 집안 분위기를 망치면 안 된다는 메시지가 여성의 몸속에서는 심어져 있는 것 같다.

이 메시지를 심어 준 것은 어쩌면 오랜 남성중심의 사회에서 바깥일과 안의 일로 나뉜 구조 속에서 생활해왔기 때문이기도 하다.

아직도 가사노동에는 아빠는 없다. 자녀들의 양육에도 아빠는 없다. 오늘도 많은 남편들은 아내의 퇴근을 기다리며 아이들에게 “엄마 오면 같이 먹자”를 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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