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보영 수필가

작은 나나니벌이 눈물겨운 사투를 벌리고 있다. 제 몸보다 몇 배나 큰 애벌레를 끌고 가느라 낭떠러지로 굴러 떨어지고 기어오르기를 반복하면서 어딘가에 다다르더니 애벌레를 내려놓고 땅을 파기 시작한다. 날렵한 솜씨로 흙을 헤집는가 싶더니 작은 굴이 보인다. 굴 안으로 애벌레를 끌고 들어가려 하지만 입구가 좁아 잘 들어가지 않자 굴 입구를 헤집어 조금 넓인 뒤 사력을 다해 애벌레를 밀어 넣는다. 놀랍게도 굴 안에는 이미 많은 애벌레들이 쌓여 있고 그 옆에는 이제 막 알에서 깨어난 나나니벌의 새끼들이 억척스럽게 애벌레를 먹고 있다. 나나니벌이 사투를 벌여가며 애벌레를 끌고 온 까닭은 새끼들의 어미였기 때문이었던 것이다.

‘돌돌돌’ 일정한 간격을 두고 움직이는 기계음과 더불어 ‘사르륵 사르륵’ 곱고 섬세한 소리들이 밤의 정적을 가르며 울려 퍼진다. 이는 작은 손재봉틀이 돌아가는 소리이고 재봉틀이 돌아감에 따라 고운 비단 천들이 노루발 밑을 스쳐 지나가는 소리다. 내 유년의 시절 이 소리를 자장가인양 들으며 잠을 자고난 아침이면 재봉틀 옆에는 내일모레면 시집을 간다는 이웃집 처녀들이 혼례식 날입을 비단 옷이나 자식들의 혼사를 위해 상견례를 하러 가기 위한 윗옷들이 놓여 있었다.

왕바다리 한마리가 튼실한 나무 몸통 한곳을 택해 집을 짓고 있다. 기둥을 세우기 위해 짙은 갈색의 마른 나무 조각들을 입으로 잘게 부수어 타액으로 버무려가지고 나무 몸통 한 곳을 택해 붙여가며 기둥을 세운 뒤 기둥을 중심으로 육각형의 방을 하나하나 만들어 간다. 방의 개수가 늘어나면서 부터는 기둥이 부실해 집이 무너질까봐 요모조모 살피며 집을 짓는 모습이 유능한 건축가를 방불케 한다. 각고의 노력 끝에 튼실하고 아름다운 방들이 수 십 개나 되는 고대광실 같은 집이 지어지면 방 한 칸에 하나씩 산란을 한 후 알에서 새끼가 깨어나기 까지 있는 힘을 다해 보살핀다. 날이 더우면 알들이 상할까봐 방 앞에 서서 날개가 상하는 줄도 모르고 바람을 일으키기 위해 힘껏 날갯짓을 하며 퍼덕이는 모습이 애처롭다 못해 경이롭다.

어린 나는 엄마가 밤이 이슥하도록 일감을 손에서 내려놓지 못하고 재봉틀을 돌리는 이유를 알 수 없었다. 엄마는 밤에도 잠자는 것 보다 예쁜 옷을 만드는 게 더 좋은가보다 라고 생각했고 자고나면 고운 옷들이 만들어져 있는 것이 마냥 신기 했다. 그리고 마름질을 하면서 생겨난 색색의 자투리 천들이 모여 지는 것이 기쁘기만 했다. 밤을 낮 삼아 돌아가던 재봉틀 소리가 아버지의 박봉으로 여섯이나 되는 자식들 건사하기 힘들어 토해내는 어머니의 신음 소리라는 것을 알지 못했다.

알들이 부화해 새끼들이 태어나면 어미 왕바다리는 새끼들을 기르기 위해 사력을 다한다. 초록의 연한 잎들을 골라 잘게 부수어 한 덩어리로 만든 것을 입으로 물고 와서 방마다 옮겨가며 새끼들의 입에 골고루 나누어 먹여 새끼들을 키워낸다. 그 뿐인가. 날이 가물기라도 할라치면 집이 부서질 새라 입으로 물을 물어다 지붕위에 토해내어 수분을 보충해 주고, 장마가 질 때면 지붕위의 물을 입으로 빨아들여 집 밖으로 뱉어내기를 반복해가며 둥지를 지킨다.

반짇고리 안의 고운 자투리 천들은 어머니의 손끝을 통해 놀랍게 변신 하곤 했다. 어느 때는 내 색동저고리가 되고, 남동생의 조끼가 될 때도 있었다. 어린 시절 손끝 여문 어머니 덕분에 나는 항상 고운 옷을 입었고 또래들의 부러움의 대상이 되었다. 밤을 낮 삼아 돌아가던 재봉틀 소리는 당신 자식들의 입성이며 밥이었고, 장성한 분량에 이르기까지 자라게 하는데 밑거름이 되었던 것이다.

어미 나나니벌이나 왕바다리는 그들에게 주어진 종족 보전의 의무를 있는 힘을 다해 감당한다. 한 생을 살아가는 동안 몇 차례에 걸쳐 산란을 하고 알이 부화해 성충이 되기까지 온 힘을 다해 보살피기를 반복하며 대가족을 이룬다. 때가 되어 보듬었던 가족들이 모두 둥지를 떠나고 빈집에 홀로 남은 왕바다리는 그제야 제 소임을 다했다는 듯 조용히 날개를 접고 땅으로 내려 앉아 생을 마감한다.

어머니는 늘 그랬다. 당신 자신을 위해서는 반반한 옷가지 하나 장만하지 않으면서도 자식들의 매무새는 언제나 정갈하고 고운 모습으로 단장 시키려 애쓰셨다. 어린 자식들의 입에 이밥 한 술이라도 더 넣어 주려고 지난한 삶을 기꺼이 감당 하셨다. 고단한 삶을 살아 내면서도 고단타 내색하지 않으셨다. 기력이 다해 심신이 연약해 지신 뒤에도 장성해 일가를 이루고 살아가는 자식들의 안위가 걱정되어 애면글면 가슴앓이를 하시며 일생을 사셨다.

본능 중에 가장 위대한 것은 모성본능이 아닌가싶다. 세상의 어머니들은 자식을 위해서라면 섶을 지고 불속에 뛰어 들 수 있을 만큼 강하다. 내 어머니가 그랬듯이 아이를 품에 않은 모든 어머니들이 그러하리라. 나나니벌이나 왕바다리의 모성본능 역시 처절하리만큼 아름답고 위대하다. 어찌 저들을 보고 한갓 미물에 지나지 않는다고 업신여길 수 있을 것인가. 전능자가 생명 있는 모두에게 부여한 사랑 중에 모성보다 더한 사랑은 어느 곳에도 존재하지 않는 것은 아닌지 모른다.

*나나니벌과 왕바다리의 이야기는 MBC에서 방영한 다큐의 장면들을 통해 얻은 것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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