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현숙 청주시 성안동주민센터 행정민원팀장

인내심의 사전적 의미는 ‘괴로움이나 어려움 등을 참고 견뎌내는 마음’이다. ‘참을 인(忍)’자의 한문을 풀어보면 ‘칼 도(刀)’자와 ‘마음 심(心)’자다. 그대로 해석하면 ‘가슴에 칼을 얹고 있다’라고 풀이된다. 시퍼런 칼을 가슴 위에 놓고 잘못하다가는 가슴 위에 놓인 칼에 찔릴지도 모를 상황이다. 이렇듯 ‘참을 인(忍)’자는 참지 못하는 자에게 가장 먼저 피해가 일어난다는 뜻을 담고 있다. ‘참을 인(忍) 자 세 번이면 살인도 면한다’라는 말이 있다.

조선 유사에 이 말의 유래가 있다. 홍계관은 조선 시대 유명한 점쟁이다. 어느 날 홍계관에게 한 선비가 찾아와 신수점을 봐 달라고 부탁했다. 홍계관은 조심스레 말했다.

“장차 천하에 이름을 떨쳐 부귀할 상이지만 실수로 사람을 죽여서 평생을 망칠 수도 있겠소. ‘忍’자를 써서 집 안 곳곳마다 붙이시오.”

“그게 뭐 어렵겠소이까. 알았소이다.”

선비는 그날 집으로 가서 ‘忍’자를 대문, 안방, 마루, 부엌, 기둥 등에 붙였다. 얼마 후 선비는 술이 취해 집에 돌아와 방문을 열었다가 깜짝 놀랐다. 아내가 웬 상투 튼 외간 남자와 함께 자고 있었기 때문이다. 선비는 부엌으로 달려가 식칼을 들었으나 부엌문에 붙여 놓은 ‘忍’자를 보았고 잠시 멈칫했다.

하지만 분을 삭일 수 없어 식칼을 들고 부엌을 뛰쳐나왔는데 기둥에 써 붙인 ‘忍’자가 다시 눈에 들어왔다. 또다시 선비는 멈칫했다가 고개를 흔들고는 방문 앞에 붙인 ‘忍’자를 보았다.

한 번도 아니고 세 번이나 ‘忍’ 자를 보자 선비는 또다시 망설였다. 아주 짧은 순간이나마 ‘忍’자의 의미를 되새겨 본 것이다. 그때 인기척을 느낀 선비의 아내가 방문을 열고 나왔다.

“죄송합니다. 제가 깜빡 잠이 들어 어느 결에 오신 지도 몰랐어요.”

선비는 씩씩대면서 다짜고짜 물었다.

“방안에 상투 튼 놈은 누구요?”

“상투라니요?”

아내는 반문하면서 방안으로 되돌아가 잠자는 이를 깨웠고 그 사람은 선비를 알아보고 인사했다.

“형부 오셨어요? 죄송해요. 이런 모습을 보여서.”

처제였다. 알고 보니 처제가 머리를 감고 젖은 머리를 위로 움켜 맨 채 잠들었는데 선비가 그 머리 모양을 상투로 착각했던 것이다.

인내심이라는 단어는 한편으로는 욕구 불만, 소외감, 스트레스, 분노 같은 단어를 떠올리게 한다. 하지만 인내심은 불필요한 분노에 휩쓸리지 않고 평온한 마음을 유지할 수 있게 해주는 능력이다.

인내심은 자기변화라고 생각한다. 즉 인내심은 심리적이고 주관적인 것이기에 자신이 변하면 다른 사람들도 전혀 다르게 보인다. 나는 인내심을 키우기 위해 생각하는 방법을 변화시킬 필요가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건 지극히 주관적인 것이다.

스스로를 인정하고 조급하게 생각하지 말자. 책에서 얻는 것은 지식이지만 살면서 얻는 것은 지혜이다. 거목이 수많은 세월 동안 시련과 인내의 기간을 거쳐 사람들에게 그늘을 제공하는 것처럼 단기간에 이뤄지는 것은 없다. 인내심도 그러하다.

살면서 참기 힘든 상황에서 그걸 긍정의 마음으로 한 번 더 숨을 고르고 생각을 전환하면 언젠가는 나에게 큰 선물이 돼서 다가올 것이다. 무조건 참으라는 것이 아니다. 혼자서만 살 수 있는 세상이 아니기에 적당한 분노와 화를 나름대로의 방법대로 풀면서 마음을 다스리라는 것이다.

오늘도 안내심에 관한 명언을 한 번 새기며 새로운 오늘을 맞이하자. 인내하고 시간을 두면 힘이나 노여움이 이루는 것 이상의 것을 성취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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