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한솔 홍익불교대학 철학교수

우리나라의 문학에 햄릿과 같이 혹은 몬테크리스트 백작과 같은 흙을 파먹는 것과 같은 비참한 생활을 계속하면서도 목적을 달성할 때까지 물고 늘어진다고 하는 살아남아 기어코 버틴다고 하는 주인공이 있을까. 그 대답은 분명히 ‘노’다. 그러한 사고법의 토양이 우리에게는 없기 때문이다. 중용을 택하고 담백하다. 철저함이 부족하고 무엇이나 강물에 흘려버리고 만다. 포기의 감각이 발달되고 그것이 미덕으로 연결되어 있는 것이다. 이러한 성격적 습관이 우리나라 사람들의 정신력의 박약과 행동력의 결여라고 하는 마이너스 요인을 가져온 것만은 분명하리라. 행동력, 실행력은 물고 늘어지는 집념과 담대함을 수반하지 않으면 진짜가 아니다. 따라서 한번 물었다 하면 결코 놓아주지 않는다고 하는 이른바 감투정신의 양성이야말로 행동력을 기르는 가장 큰 비결이 아닐 수 없다.

당신은 미국의 여류 비행가 아멜리아 에어하트의 이야기를 아는가. 그녀는 몇 년 동안 결혼을 연기할 만큼 비행기를 사랑했고 여기에 온 정성을 불태웠다. 의회는 그녀에게 비행십자 훈장을 수여하고 1930년대 그녀의 이름은 모든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렸다. 그녀는 어떠한 파티에서도 여왕처럼 받들어졌고 수많은 명사들의 초대를 받았으며 세계 각처에서 날아오는 팬레터에 파묻혔다. 그리고도 그녀는 비행기록을 몇 차례나 갱신하고 강연도 했으며 글도 썼다. 1937년 드디어 그녀는 세계일주 비행을 감행하게 된다. 그리고는 그녀의 비행기는 소식이 끊겼다. 이 사건은 세계적인 센세이션을 불러 일으켰으나 수색대는 결국 그녀를 찾아내지 못하고 만다. 행방불명의 진상은 기어이 밝혀지지 않았으나 그녀가 마흔 살이 되기 전에 죽은 것만은 확실하다. 이 위대한 행동가에게는 말할 수 없는 불행이었고 그를 아는 모든 사람들은 경건하게 그녀의 명복을 빌었다. 그러나 자기 일에 아무런 보람을 느끼지 못하고 백 살까지 늘어지게 산 사람보다 비록 짧은 생애였지만 얼마나 멋지게 살다가 죽어간 인생인가.

한정된 삶을 부여받은 인간이 무엇인가 가치 있는 일에 매달려 자신을 불태우는 모습을 본다는 것은 얼마나 벅찬 감격인가. 신은 우리들이 이 세상에서 활동적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생명을 창조했다.

신은 우리들이 생활에 보람을 찾고 행복하게 되도록 훌륭한 육체와 정교한 마음을 부여했다. 당신의 마음으로부터 공포를 털어버리고 당신의 목적달성에 신의 가호를 믿어야 한다. 얼마나 사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고 어떻게 사느냐가 더욱 값진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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