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전 이야기]갑과 을
[죽전 이야기]갑과 을
  • 충청매일
  • 승인 2017.06.29 1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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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영철 아동문학가

아내가 작성한 계약서를 보다가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 임차인이 19세를 넘어섰으니 법률행위를 할 수 있기는 하지만 아무래도 미심쩍은 구석이 보인다. “여보, 부동산에서 임차인을 직접 보았소? 나이가 너무 어린 것이 마음에 걸리오.”, “아니요, 임차인은 만나지 못했어요. 부동산 중개인 말이 임차인은 직장을 다녀서 만나기 힘들다고 하네요. 그래서 중개인하고 계약하였는데 무엇이 잘못됐나요?”한다.

계약은 당사자 간에 이루어지는 것이 관례요, 혹 대리로 계약을 할 경우는 대리인 위임장이 있어야 하는데 법률적인 지식이 없는 아내가 그것을 간과한 것 같다. 그래서 계약서에 적혀 있는 부동산에 전화하여 계약상의 잘못을 이야기하니 부동산 중개인은 막무가내로 자신이 행한 법률행위가 옳다고 우긴다.

“이보시오. 계약은 갑과 을이 하는 것이고, 당신은 중개인으로서 그 계약이 원만히 이루어지도록 조언하고 도와주는 것이지 어찌 당신이 위임장도 없이 직접 을이 되어 계약한단 말이오. 당신 정당한 부동산 중개인 맞소?“하며 조목조목 따지니 그 때서야 목소리를 낮추고는 연신 죄송하다고 한다. 내 옆에서 귀를 세우고 통화하는 내용을 듣던 아내는 그제야 한숨을 ‘푸우’하고 쉰다.

갑과 을 이야기가 나왔으니 이달 초에 있었던 일이 생각난다. 충북에 있는 조그마한 마을에 축제가 있어 지인과 함께 축제장을 방문했다. 식이 오전 11시30분에 시작된다고 해 부지런히 갔더니 오히려 시간적인 여유가 생겨 미리 축제장을 둘러보았다. 작년보다 사람도 많았고, 축제장도 잘 꾸며져 있었다. 아는 분들과 인사도 하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 보니 오전 11시30분이 되었다. 그런데 이상하게 개회식을 할 기미가 전혀 보이지 않았다.

“11시30분에 개회식하기로 한 것이 아닌가요?” 하고 진행자에게 물었다. “지자체장께서 아직 오시지 않아서요. 다른 행사가 있어 그곳을 다녀오시기 때문에 좀 늦나 봅니다.”, “그래요. 저는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분명 안내서를 보면 11시30분에 식이 거행된다고 약속해 놓았는데 한 사람 때문에 이 식을 30분씩이나 연기 한다고요? 그럼 당초에 12시로 정했으면 참석자들이 기다릴 필요가 없지 않습니까?”

지자체가 이 축제에 어떤 지원이나 보조를 해 주는지는 나는 잘 모른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비록 조그마한 마을의 축제라 할지라도 참석자들과 한 약속은 꼭 지켜야 하는 것이다. 천재지변으로 인한 지연도 아니고 어떤 특정인 때문에 30분씩이나 식을 지연한다는 것은 이해하기 어려웠다. 식이 지연되자 축제장에 있던 사람들이 하나둘 자리에서 일어나 체험장 있는 농가로 떠나기도 하고, 배가 고프다는 아이들의 칭얼거림에 축제장을 배회하기도 한다. 거의 12시가 다 되자 농악을 앞세우고 앞좌석에 앉을 사람이 도착했지만 30분 전에 고조됐던 축제의 열기는 가뭄 속 쩍 갈라진 논바닥의 한 줌 물처럼 그렇게 땅속으로 스며들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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