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북연구원 연구위원

얼마 전 지인들과 저녁식사를 하면서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가 중학교에서 상담선생님으로 근무하는 분의 고충을 듣게 됐다. 해당 학교의 체육선생님의 폭력으로 괴로워하던 학생을 상담하게 되었고, 그냥 숨기고 넘어 가기에는 너무 큰 사안이라 교감, 교장을 통해 건의 드리고, 많은 고민 후에 교육청에 신고를 하게 되었다고 한다.

문제는 그때부터 발생했다. 폭력을 가한 체육선생님은 징계를 받았지만 학교를 떠나지 않았고, 그 체육선생님을 비롯한 다른 동료 교사들에게 내부고발한 지인은 따가운 눈총을 받아야만 했다. 지인은 비정규직이었고, 가장 힘든 것이 정규직 교사들의 시선이라고 한다. 가해자가 있었고, 그로 인한 피해자들도 있었으며, 그 피해자를 상담하고 가해자가 합당한 처벌을 받도록 조치한 제보자가 있었지만 결국 모두가 고통을 받는 결과로 돌아왔다. 그 지인은 내부고발 한 것을 후회하기도 했으나, 다행히 종교적인 힘과 기도로 극복해 가고 있다는 희망적(?) 말로 이야기를 맺었다.

지난해 음성군에서 하수처리장 무단방류 및 원격감시장치(TMS) 조작 사실이 내부고발로 알려져 관계자들이 처벌을 받는 과정에 있다. 수년간 이어져 온 불법행위가 내부고발에 의해 드러나게 됐고, 하천오염원 원인이 드러나게 된 것이다.

그러나 사회적으로 큰 기여를 한 내부 고발자는 해고됐고 심적인 고통을 겪어야 했다. 내부 고발을 결정하기 전에 매일 부딪혔던 동료들을 생각하며 많은 고민도 있었다고 한다. 다행히 제보자는 최근 공익신고자 보호법 등에 의해 불기소 처분됐으나, 수년간 무단방류로 인한 하천오염의 피해는 지역 전체가 떠안아야 하는 숙제로 남아있다.

필자도 몇 년 전에 비슷한 경험을 했고, 힘겨운 행정싸움을 거쳐 원상복귀 했으며 심적인 고통도 거의 잊혀져 가고 있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관계된 동료와의 앙금은 아직도 풀지 못하고 있어 안타까운 심정이다. 회사 내부의 문제나 지역의 불편한 진실을 숨김없이 드러낸다는 것은, 그 결과가 가져다주는 제보자 또는 고발자에 대한 불이익이나 따가운 시선을 생각하면 아직도 많은 어려움이 있는 것이 사실이다. 필자와 같이 비교적 안정된 직장의 정규직도 그러한데 일반 기업이나 비정규직은 인생의 방향을 좌우할 큰 결심과 각오가 아니면 불가능한 일이다. 단순히 공명심, 정의감, 양심으로 제보나 고발을 했던 사람들이 나중에 너무나 큰 고통과 후회의 삶을 살아가는 것을 종종 목격하기도 한다.

가장 바람직한 것은 원천적으로 내부고발의 원인 행위가 발생하지 않는 것이겠지만, 이것은 나라의 발전, 의식수준을 막론하고 어디에서나 일어나는 일이다. 다만, 선진국과의 차이는 문제가 발생했을 때 또는 그 문제에 대해 제보한 사람이 나타났을 때의 사회적 태도인 것이다. 특히 그들이 사회적 약자일 경우 더욱 그렇다. 그들에게는 안정된 직장과 급여, 동료들과의 관계, 가족의 생계뿐만 아니라 정신적, 육체적 고통이 남을 뿐이다. 최근 한 지인의 이러한 사정을 알게 되었고, 진작 관심을 가져주지 못하고 아무런 도움도 되지 못해 미안하고 부끄러운 마음이다. 그는 비정규직이었고, 그래서 문제를 꺼내 놓기엔 너무도 약자였다. 그에게는 희망적 결말도 보람 있는 추억도 남지 않았다. 비정한 사회의 쓴 현실만 가슴 깊이 새겨질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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