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한솔 홍익불교대학 철학교수

괴테는 “인간의 운명이 결정되는 것은 순간인 것”이라고 쓰고 있지만 이 순간의 승기(勝氣)를 잡느냐 못 잡느냐에 따라 사람의 일생은 크게 달라지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은 스스로 승기를 저 버리면서 자기에게는 승기가 없었다고 생각한다”하고 셰익스피어도 지적했지만 모든 신경을 집중해 승기를 놓치는 어리석음을 범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결단과 실행의 용기를 지녀야 하는 것이다.

무작정 미국으로 건너가 고학으로 대학을 나온 어떤 공학박사의 이야기가 있다. 계획 같은 것은 전혀 없었다. 무작정 가 놓고 보면 무슨 수가 생기리라는 막연한 기대가 전부였다.

오직 한 사람, 아는 사람이라고는 그가 우리나라에 왔을 때 인사를 나눈 적이 있는 펜실베이니아 대학의 B교수뿐. 그는 B교수를 찾아갔다.

전혀 일방적으로 구원을 호소 받은 B교수는 당황할 수밖에. 그에게 사비 유학(私費留學)의 준비는커녕 당장 먹고 잘 수 있는 돈조차 없었으므로 B교수가 당황한 것도 무리가 아니다.

그러나 멀고 먼 한국에서 동쪽도 서쪽도 모르는 미국에 자기 혼자만을 믿고 찾아온 이 청년을 그냥 내쫓을 수는 없었다. B교수는 대학에서 조수(助手)로 써 주기를 학장에게 교섭했지만 겨우 한국에서 대학을 나온 그에게 그러한 자리가 있을 턱이 없었다. 그는 우리 대사관을 찾았다.

그러나 대사관도 도와주기는커녕 “이렇게 무작정 도미(渡美)한 자는 강제 송환해야 한다”고 호통을 쳤다. 그는 절망한 나머지 자살을 생각했다. 사방은 완전히 두꺼운 콘크리트 벽으로 막히고 칠흑 같은 어둠속에 혼자 있는 꼴이었다. B교수도 고심했다. 인간적으로 아주 선량한 사나이였으므로 어떻게 해서든지 그가 생활할 수 있도록 방책을 세워주려고 노력했지만 일자리가 쉽지 않았다.

어느 날 B교수는 그 앞에서 중얼 거렸다. “만약 당신에게 독사(毒蛇)에 관한 지식이 있다면 연구비의 일부를 떼 주어 나의 조수(助手)로 삼을 수가 있는데…” 그러자 그는 교수에게 덤벼들 듯 한 눈빛으로 “할 수 있습니다. 독사에 관한 것이라면 알고 있습니다”하고 물고 늘어졌다. 이 단호한 대답 한 마디가 그의 일생을 결정했다. B교수는 그의 말을 그대로 믿었고 개인 조수로서 연구실에서 일하게 한 것이다. 실제로 그는 독사(毒蛇)에 관한 것은 아무것도 몰랐다.

그러나 모든 정력을 집중해 찬스를 잡는 그 처절한 행동력에는 경탄을 금할 수가 없다. 그 후 그는 주위의 사람들이 “도대체 당신은 언제 자느냐”고 감탄할 정도의 초인적 노력으로 훌륭히 독사에 관한 일을 해낼 수 있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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