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성훈 충북남부보훈지청 주무관

1919년 있었던 3·1운동은 일본의 식민지 지배에 저항해 전 민족이 일어난 항일독립운동으로 일제 강점기에 나타난 최대 규모의 민족운동이었으며, 제1차 세계대전 이후 전승국의 식민지에서 최초로 일어난 대규모 독립운동이었다.

그러나 일본은 이러한 우리민족의 독립에 대한 열망을 총, 칼을 앞세운 무력이라는 잔혹한 방법으로 무참히 짓밟아버렸고, 이에 많은 독립운동가와 애국지사 일반 시민들은 일본의 통치로부터 벗어나 독립을 이루기 위해서는 좀 더 체계적으로 일제에 대항하고 국권을 찾을 수 있는 조직적인 대항이 필요하다는 것에 의견이 모아졌다.

이러한 생각을 바탕으로 1919년 4월 11일 임시의정원을 구성하고, 각 도 대의원 30명이 모여서 임시헌장 10개조를 채택했으며, 4월 13일 한성임시정부와 통합해 중국 상하이에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수립, 선포했다.

1919년 4월 13일, 중국 상하이에 세워진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우리나라 역사상 최초의 민주 공화정 정부이고, 세계 식민지 역사상 가장 오랜 기간에 걸쳐서 저항하고 존속한 임시정부였다.

또한 이러한 임시정부는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과거가 아닌 현재임을 대한민국헌법 전문 “유구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우리 대한민국은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과 불의에 항거한 4·19민주이념을 계승하고…”를 통해 밝히고 있다.

현재 대한민국은 안팎으로 많은 어려움에 봉착해 있다.

반성을 모르는 일본은 ‘부산 소녀상’ 이유로 주한일본대사를 소환했다 무려 3개월에 가까운 85일이 지난 후 귀임하는 등 독도 문제와도 겹쳐 계속적으로 우리나라와 외교적으로 불편한 행보를 보이고 있으며, 중국은 사드배치 문제로 우리와 반목하며 겉으로는 아니라고 하지만 관광과 연예 등과 같은 경제 부문에서 할 수 있는 모든 제재를 가하고 있으며, 아울러 중국내 반한 감정은 나날이 커져가고 있다.

또한 대한민국 헌정사상 최초의 현직 대통령 파면이라는 초유의 사건 후 국론은 사분오열돼 건설적 비판이 아닌 비판을 위한 비판이 오가고 있으며, 국가에 대한 국민들의 신뢰는  땅에 떨어져 온갖 추측과 음모론이 난무하며 거기에 근원을 알 수 없는 가짜 기사까지 더해져 무엇이 진실이고 무엇이 정의인지 알 수 없는 상황에 이르렀다.

역사는 끊임없이 되풀이됐고 지금과 같은 어려운 시대에 우리는 과거로부터 그 답을 찾아야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과 함께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 정신을 기억했으면 한다.

대한민국임시정부가 수립되기 전 당시 우리나라는 일본이라는 외세의 억압과 압박이 있었으며, 조국의 독립이라는 목적은 같았으나 그 이해관계를 달리하는 많은 독립운동 단체와 인사들이 있어 나라의 힘이 하나로 모이지 못했었다.

하지만, 3·1운동을 통해 체계적이고 조직적인 활동의 필요성을 느끼고, 자신들의 입장과 견해 차이를 내려놓고 수립한 것이 대한민국임시정부였고 국가의 어려움을 극복하고자 하는 정신이 있었기에 광복까지 단절되지 않고 존재한 유일한 기구가 될 수 있었다.

현재 한반도를 둘러싼 국가들은 자국의 이익을 극대화하기위해 자국우선주의 자국중심주의로 나아가고 있으며 북한의 미사일 위협은 지금도 여전히 진행형으로 계속되고 있다.

이러한 중요한 시기에 우리는 우리를 둘러싼 주변국의 정세는 물론이고 세계의 정세에 좀 더 체계적이고 조직적으로 대응할 필요가 있으며 이는 앞서 말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정신을 계승하는 것이 그 어느 때보다도 필요한 시기라 할 수 있다.

1919년 4월 13일은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기념일이다.

서로 이해를 달리하는 조직과 개인들이 갈등을 극복하고 대한민국이라는 이름하에 하나로 모일 수 있길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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