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순철 수필가

“저기 떠돌이 장사꾼 입담이 걸쭉한 것 같은데 한번 가보자.”

텁수룩한 수염, 며칠이나 감지 않았는지 떡 덩어리가 되다시피 한 머리카락, 거기에다 움푹 들어간 눈, 도저히 정상적인 사람으로 보아줄 수 없는 선배, 집에서는 그런 남자와 만난다고 성화였지만, 마음은 따뜻하고 재미있는 남자다. 어제저녁이었다. 폰을 열자 선배의 문자가 와 있었다.

“내일 열 시까지 서울역 7번 출구로 나와. 시골 5일장 구경가자”

선배의 말은 늘 명령조였다. 어찌 보면 기분 나쁠 수도 있지만, 나는 그런 감정을 전혀 느끼지 못했다. 다니던 직장이 문을 닫는 바람에 어차피 노는 몸이고, 학생운동을 하다 제적당한 선배는 아예 직장을 구하지 않고 방구석에 틀어박혀서 장편 소설을 쓴다고 매진하는 중이니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시간 내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다.

연 초가 되면 나는 어김없이 각 신문사 신춘문예 발표 난을 뒤진다. 하지만 그 어느 신문에도 선배의 이름은 오르지 않았다. 그렇다고 직접 물어본다는 것은 그의 자존심을 건드리는 것 같아 눈치만 살핀 게 벌써 5년째다. 봄이 되면 선배는 바람 쐬러 가자며 나를 자주 불러낸다. 응모했다가 떨어진 후유증 탓일 거다.

작은 읍 소재지, 오일장에는 많은 사람이 오가고 있었다. 많은 사람이라고 해봐야 시골이 가까우니 촌로들이 대부분이고 우리같이 할 일이 없어서 빈둥거리는 젊은 사람은 별반 보이지 않았다. 또 시골이 가까우니 시장에 유통되는 물건 또한 농산물이 주를 이루었다.

선배가 가리키는 곳에는 키가 껑충하고 빼빼 마른 사내가 열변을 토하고 있었고 그의 손에는 낡은 시집 한 권이 들려있었다.

“여러분 나 백청아는 이 땅에 민주주의를 꽃피우고 한국의 혼을 불사르기 위해 태어났으나 세상은 저를 버렸습니다. 이 시대를 살아오면서 가장 큰 피해를 당한 문인 중 한 명이기도 합니다. 제가 이 자리에 선 이유는 이 책을 팔기 위한 목적이 아님을 먼저 이해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그럼 선생님은 어느 장르에서 활동하였으며 소속되어있는 단체는 어디입니까?”

모여선 군중 속에서 좀 젊어 보이는 여자가 질문을 던졌다.

“저는 한국 문인협회 회원이며 시(詩)를 썼습니다. 문학에 목말라하는 문학 지망생을 구하고자 문단에 뛰어들었지만, 저 블랙리스트란 이름으로 제 꿈은 산산조각이 나고 말았습니다.”

“그러면 그 증거를 보여주실 수 있습니까?”

“물론입니다.”

“여기 우리나라 4대 일간지 중 한 곳이라 하는 한양신문 12월 23일 자 문화면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대문짝만큼은 아니어도 조그맣게나마 제 이름이 올라 있습니다.”

그는 신문을 들어 보이는데 형광펜으로 노랗게 밑줄 친 곳이 있었지만, 너무 멀어서 글자를 확인할 수는 없었다. 자신은 야당 인사 선거운동을 했기 때문에 정부로부터 지원되는 금액은 한 푼도 받지 못했으며 자신이 내는 책은 어느 서점에서도 받아주려 하지 않았다는 거다. 나는 이 대목에서 고개가 갸우뚱해졌다. 작품이 좋다면, 독자는 따라오게 되어있다. 그런데 서점에서 받아주지 않았다? 뭔가 앞뒤가 맞지 않는 느낌이 들었다.

사실 나는 시중에 떠도는 소문은 잘 믿지 않는 편이다. 어느 시대이건 사건이나 사고는 늘 있었고 그에 따른 이해득실 또한 많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정말 믿기지 않는 소문이 나돈 것은 그리 오래된 일이 아니다. 일명 ‘문화계 블랙리스트’란 낱장 광고가 나돌았는데 황당하게도 이름만 대면 금방 알 수 있는, 영화계 이창동 감독, 윤태영 엄재경 만화가, 시인 고은, 도종환, 소설가이자 전 국회의원인 김홍신, 이 밖에 가수 이승환 등 총 9천743명의 문화계 저명인사들의 이름이 떠돌고 있었다.

처음에는 누군가 화젯거리를 만들어 여당을 공격하기 위해 올린 글인 줄 알았는데 점점 양파껍질 벗듯 실체를 보여주기 시작했다.

저 속에 있는 명단을 모두 알지는 못한다. 그들이 정말 현 정부로부터 각종 지원이나 혜택을 받지 못할 만큼 중차대한 잘못을 저질렀는지도 의심스럽다. 사실은 그렇지 않을 것 같다. 무릇 예술인이란 표현과 창작의 자유가 있다. 그래서 우리나라는 민주주의 국가이다.

“우리나라에서 문학을 하려면 돈도 있어야 하고 백(빽)도 있어야 합니다. 국회의원 모모 씨 같은 경우는 의원회관에 단말기를 갖다놓고 책을 강매하지 않았습니까?”

대단한 사람같이 느껴졌다. 저렇게 소신 있게 자신을 까발리기도 쉽지 않은 일이었다.

“선배도 문학을 하고 있잖아. 원래 문인들은 반체제인사야?”

“글쎄,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고,”

“무슨 대답이 그렇게 막연해. 맞으면 맞고 아니면 아닌 거지?”

“펜은 칼보다 더 예리하고, 총보다도 더 위력이 있다고 하는 말 못 들었어?”

“그래서?”

“원래 글 쓰는 사람은 옳고 그른 것을 잘 따져. 그러다 보니까 정책적인 비판을 많이 하게 마련이야.”

“그래서 정부 인사들이 싫어한다는 말이야?”

“그렇지. 정부에서 하는 일이 모두 옳을 수는 없으니까.”

“쳇, 무슨 논리가 그래. 나는 이해가 잘 안 간다.”

“사회생활을 더 하면 자연 알게 될 거야.”

나는 사내가 떠벌리는 발아래 쌓여있는 시집(詩集) 한 권을 집어 들었다.

책 제목은 ‘샛별이 뜨면’이었다. 책을 펼쳤으나 문학에는 소질이 없으니 잘 알지도 못하고 해서 책을 선배에게 건넸다. 선배는 ‘이청아?’를 되뇌며 책을 펼쳐보다가 고개를 몇 번이나 갸웃거린다. 이윽고 사내를 자세히 살핀다.

“왜. 그래?”

“아니야”

선배의 입에서 탄식 비슷한 괴성이 터져 나왔다.

“뭐가?”

“내가 알고 있는 시인 백청아 선생은 오른쪽 귀밑에 까만 점이 있어.”

“그럼 사기꾼 아니야?”

“동명이인(同名異人)일지도 모르지, 선생의 작품을 읽고 있으면 정말 청아한 달밤에 기러기가 날고 있는 모습을 보는 것처럼 담백하고 자꾸 끌려 들어가는 데 이 글은 그런 마력이 전혀 없어.”

“선배! 저 작자 확 신고해버릴까?”

“저러다가 진짜 블랙리스트가 되는 수가 있는데 나처럼….”

“선배! 그 빨간 멍에 아직도 따라다녀? 그래서 지금껏 당선이 안 된 거야?”

“아니야! 작품성이 모자라서일 거야.”

선배는 대답은 않고 말없이 하늘만 바라보고 있었다.

SNS 기사보내기
기사제보
저작권자 © 충청매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