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영철 아동문학가

장례문화가 많이 변했다. 그 중 하나가 바로 우는 사람이 없다는 것이다. 작년 초에 교회 성도 한분이 교통사고로 돌아가셨을 때를 제외하고는 장례식장에서 우는 소리를 들은 적이 없다. 장수하는 사회가 되어서 그런지 오히려 울음대신 웃음꽃이 피기도 하니 왠지 조문객으로서 씁쓸하기만 하다.

나이가 들면 눈물이 많아진다고 하더니 내가 바로 그 짝이다. TV에서 뉴스를 보다가도 또 영화관에서 좀 감격적인 장면이 나타나면 나도 모르게 눈물이 흐른다. 아니 어떤 때에는 눈물이 줄줄 샌다는 표현이 맞을 것이다. 가족들끼리 TV를 볼 때는 좀 민망하기도 하여 슬며시 자리를 피하기도 한다. 아내의 말에 의하면 갱년기가 되어 감정의 기복이 심해서 그렇다고 하는데 맞는 말인지도 모르겠다.

돌아가신 아버지는 무척 엄했다. 그런데 연세가 들면서 잘 울었다. 중풍으로 오랜 세월 편찮으신 것도 있었겠지만 지금의 나와 같은 현상이 아닐까도 생각해 본다.

특히 직장관계로 서울로 이사하여 가끔 청주로 아버지를 뵈러 올 때면 내 두 손을 잡고 그렇게 울었다. 옆에서 그 모습을 보고 있던 형님은 막둥이를 보고 싶은 아버지의 마음이 아닌 다른 이유로 아버지께서 우는 줄 알고는 안절부절 못했다. 저녁 때 쯤 서울을 가려고 형님 집을 나서면 형님은 슬며시 다가와 묻는다. “동생, 아버지께서 무슨 말씀 안하셔?” “예, 별말씀 없으셨는데요.” “아니 그러면 왜 그렇게 우는지… 나는 내가 무슨 잘못을 하여 그러는 줄 알고…”

임신복을 입은 딸아이의 배가 제법 부르다. 작년에 결혼을 할 때 기쁨과 함께 걱정도 있었다. 요새 젊은이들은 무슨 이유인지는 잘 모르지만 임신이 잘 안된다고 한다. 그동안 별로 관심도 없던 이야기인데 딸의 결혼과 함께 나와 아내의 큰 관심사로 나타났다. 내 주위를 자세히 둘러보니 결혼하고 아이가 없는 집이 여럿이 있다. 그런데 결혼 후 한 달 쯤 지나서 사위로부터 딸의 임신 소식을 들으니 얼마나 기쁜지 모른다. 그 때도 나의 눈에서는 기쁨의 눈물이 줄줄 흘렀다. “아니 친정어머니인 내가 기쁨의 눈물을 흘려야지 왜 당신이 그렇게 우세요.”

요 며칠 햇볕이 따스하여 거실에서 책 읽기가 좋다. 내가 처음 냈던 수필집을 읽어 본다. “맞아 이 때의 내 감정은 이랬는데…“어, 왜 이런 표현을 했을까? 교정을 잘 보았어야 했는데”하며 후회하기도 한다. 그 중에 우시장에서 일어났던 이야기가 신문에 난 것을 보고 쓴 글이 있다. 소 주인이 우시장에서 송아지를 팔고 어미 소만 데리고 오려고 하는데 어미 소의 간절한 울음과 함께 눈에서 눈물이 흐르는 것을 보고는 결국 송아지를 다시 데리고 왔다는 기사이다. 그 때의 감정이나 지금이나 똑 같은지 내가 쓴 글을 읽으면서도 나도 모르게 눈물이 줄줄 흐른다. ‘하물며 짐승도 저렇게 자식을 사랑하는데 우리 인간은 점점 더 사악해 지니’라는 생각이 들자 이번에는 참회의 눈물인지 뭔지도 모를 눈물이 또 주르르 흐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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