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한솔 홍익불교대학 철학교수

“젊은 사람들에게는 무슨 일을 일으키고 창조해 가는 힘이 있다. 그러나 그것의 좋고 나쁨을 판별하기 위해서는 노인의 체험도 중시(重視)되지 않으면 안 된다. 젊은 사람들의 의욕적인 창조력과 노인의 체험에 의한 지혜가 적절히 융합될 때 거기에서 무엇인가 큰 것이 생겨날 수 있는 것이다.”

경영의 신(神)이라 일컬어지는 일본의 마쯔시다 고오노스케(松下幸之助)의 말이다.

자기의 주변을 둘러보라. 우리는 선인(先人)들이 창조해준 물건들로 둘러싸여 있으며 그들의 창조 덕분에 풍요로운 생활을 누리고 있음을 알고 새삼스럽게 놀라게 된다. 이 종이, 이 펜, 이 잉크도 모두 누군가의 창조물이다.

얼마나 고마운 일인가. 선인들이 무엇인가를 창조했고 실현해 주었기 때문에 이렇게 풍요로운 생활을 누릴 수 있다는 것을 감사해야 한다. 그리고 우리들도 이 세상에 태어난 이상 무엇인가 새로운 것을 만들어서 창조를 이룩해야 후손들로부터 감사받을 수 있게 될 것이다.

우리들 인생에 있어서 최고의 가치는 무엇보다도 이 창조적 행위에 있다. 그러나 창조는 모방에서 시작된다. 본래 ‘배운다’는 말은 ‘흉내 낸다’는 말에서 생겨난 것이라고 한다. 아이들이 부모, 형제나 친구, 선배들의 흉내를 내고 모방하다가 한 사람 몫의 일을 할 수 있게 되고 그러면서 조금씩 자기 것을 첨가하고 조화시켜 드디어 새로운 것을 창조할 수 있게 되어가는 것이다.

처음에는 그 모방에서 어느 정도 창조적인 것을 찾아낼 수 있는가 하는 것이 어려운 문제다. 그러나 그 싹을 놓치지 않고 발견해서 격려하고 인정해 줌으로써 인간은 성장되어 간다.

이런 점에서 ‘인정해 준다’는 평가는 자라나는 세대들에게 극히 중요한 의미를 갖는 것이며 여기에 부모나 선배, 상사의 중대한 역할이 있는 것이다.

창조란 먼저 모든 기성사실(旣成事實)에 대한 의문에서 시작되고 이미 알고 있는 요소에 새로운 기축(機軸)을 못 박는 것에서 생겨난다. 처음에는 기성사실을 겸허한 자세로 배우는 데서 출발해 학습의 과정에서 새로운 발상(發想)이 싹터 나오는 것이다.

한 번 밖에 주어지지 않는 자기의 인생이지만 창조를 위한 모험을 하지 않고 남의 흉내만 내면서 살아가는 것도 무방한 일일지 모른다. 그러나 아무리 작은 것이라도 자기 나름대로 새로운 것을 창조하지 않으면 보람이 없다고 하는 의지, 의욕이 강력해야만 창조는 가능해진다.

이 의지와 의욕을 높이 평가해 주고 이를 격려해 주는 것이야 말로 위에 있는 자로서 마땅히 갖추어야 할 자세라고 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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