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전 이야기]바느질하는 남자
[죽전 이야기]바느질하는 남자
  • 충청매일
  • 승인 2017.03.09 19: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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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영철 아동문학가

아내는 아들 결혼식에 입을 한복을 고른다며 지난주부터 나를 앞세우고 한복집 순례를 시작했다. 어느 한복집을 막론하고 들어서면 고운 색깔로 인해 눈이 먼저 호사한다. 한복의 부드러운 선과 조화를 이룬 은은한 파스텔 색감은 나도 모르는 사이 황홀경에 빠지게 한다. 아내는 벌써 한 시간 이상 모델이 되어 입고 벗기를 계속한다. 내가 서서히 지쳐 연거푸 하품을 할 때쯤 아내는 분홍빛치마에 파란 저고리를 입고 나타났다. 옷이 날개라더니 아내는 예쁜 선녀로 변신하여 나를 보며 웃고 있다. 아무리 보아도 곱다. 이럴 줄 알았으면 아들 하나 더 낳을 걸 그랬다는 생각이 든다.

신혼 때 일이다. 신혼여행을 다녀오니 형님께서 하시는 말씀이 어머니께서 돌아가셨지만 산소에 가서 인사를 하고 오는 것이 예의라 하셨다. 갈 때는 간단한 제사상과 함께 한복을 한 벌 사서 어머니 산소 옆에서 태우라는 조언까지 해 주신다. 아내는 태울 한복을 비싼 돈을 주고 사느니 자기가 만들면 될 것 같다며 시장에 가서 옷감을 사왔다. 그러나 생각처럼 한복을 만든다는 것이 어디 그리 쉬울까?

어머니는 부지런하셨다. 성격도 쾌활하시어 동네 사람들에게 인기가 좋으셨다. 손재주도 있으셔서 음식은 물론 재봉틀도 잘 다루셨다. 여름이 되면 아버지 적삼이며 내 옷도 한나절이면 뚝딱 만들어 주시곤 하셨다. 그런 어머니의 영향인지는 몰라도 어릴 때 곧잘 재봉틀을 돌렸다. 그리고 어머니께서 쓰고 남은 색색의 헝겊을 모았다가 조각보도 만들고 어린아이 턱받이도 만들어 필요한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기도 했다.

퇴근하고 집으로 돌아오니 아내는 안방에서 어머니 한복을 만들고 있었다. “어머 오늘 일찍 오셨네요”하며 짓던 한복을 슬며시 윗목으로 밀어 놓고는 부엌으로 나갔다. 호기심에 아내가 만들던 어머니 한복을 펼쳐 보고는 그만 웃고 말았다. 저고리라고 만든 것을 보니 내가 생각한 것과는 많은 차이가 났다. 얼른 아내의 한복을 가져다가 본을 뜨고 마름질을 한 후 손바느질을 하기 시작하였다. 대충 한복의 모양이 나오자 마지막으로 아내가 사다 놓은 동정을 달아 놓으니 산 것처럼 산뜻하지는 않지만 그런대로 저고리 모양이 나왔다. 아내는 다 식어가는 저녁상을 옆에 두고 한복을 만드는 내 모습이 신기한 듯이 옆에 앉아서 말없이 지켜보고 있었다.

그 후 아내는 내가 보는 앞에서는 바늘을 잡으려 하지 않았다. 혹 아이들이 놀다가 단추가 떨어 졌다거나 옷이 찢어지면 이런저런 핑계를 대며 나에게 미루곤 했다. 그리고 언제부터 인지 시력이 자꾸 떨어진다며 아예 바느질을 포기하고 말았다.

겨울 햇볕이 따스하다. 그 옛날 어머니께서 하시던 대로 구멍 난 양말이며, 단추가 떨어진 옷들을 챙겨 거실 한 옆에 앉아서 바느질을 한다. 외출하고 막 들어 온 아내가 그런 내 모습을 보고는 심기가 틀렸는지 한 소리한다. “아이고, 그만 궁상떨어요. 농 안에 보면 명절 때 선물로 가져 온 양말이며, 사은품으로 받은 양말이 지천이에요. 죽을 때까지 신어도 다 못 신을 텐데 웬 궁상을 저렇게 떠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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