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명순의 the생각해보기] 개미의 역습이 필요할 때
[배명순의 the생각해보기] 개미의 역습이 필요할 때
  • 충청매일
  • 승인 2017.02.09 1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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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연구원 연구위원

주식시장에서 거대 자본가의 상대적인 표현으로 개미 투자자라는 말이 있다. 기업이나 단체의 자금력에 비해 개인의 자금력이 약해 투자에 불리하고, 거대 자본가들에게 매일 깨지고 짓밟힌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인 것 같다. 그런데도 인간 개미들은 여전히 투자를 하고, 막강한 자본가들은 그런 개미의 손실을 통해 이익을 본다. 주식을 하지 않는 사람이라도 웬만하면 들어서 아는 이치인데도 개미들은 끊임없이 몰려들고 투자한다.

2017년 새해 첫 주, 또 다른 개미들에게 참사가 벌어졌다. 대기업의 무책임하고 부도덕적인 상술행위와 이를 눈감아 준 정부에게 ‘법’은 그들로 인해 가족을 잃고 고통 받고 살아가는 피해자들에게 또 다시 비참함을 안겨주고 말았다.

2011년 11월 정체모를 폐질환 사망자의 원인이 가습기 살균제라는 것이 밝혀질 때만 하더라도 이렇게 허무하게 끝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폐질환과 사망의 원인이 가습기 살균제로 밝혀졌으니 충분한 대책과 피해보상을 받을 수 있을 줄 알았으나, 그 원인 물질인 폴리헥사메틸렌구아니딘(PHMG), 염화올리고에톡시에틸구아니딘(PGH)처럼 ‘법’은 너무나 어렵고 힘들었으며 약자의 편이 아니었다. 법은 그렇게 전 옥시 대표에게 증거 불충분 ‘무죄’, 전 옥시레킷벤키저 대표에게 징역 7년이라는 솜방망이 선고를 내렸다. 정부의 태도는 더욱 화를 불러오게 했다. 피해자들과 시민단체의 지속적인 탄원과 요구로 마지못해 피해자 구제 접수를 받더니 그나마도 작년 초에 종료했고, 지금은 환경보건시민센터라는 민간단체에서 대신하고 있다.

며칠 전 환경보건시민센터에서 발표한 자료를 보면 정체모를 폐질환과 사망의 원인이 가습기 살균제였다는 것이 밝혀진 2011년부터 지난해 2016년까지 국내 전체 피해신고자는 5천341명이었고, 이 중 1천112명이 사망했다. 경기도와 서울시가 가장 많은 피해자가 발생했고, 대부분 도시지역에서 피해자가 압도적으로 많았다. 충북의 경우 피해 신고의 87% 가량이 시 지역에서 접수됐고, 사망자도 85%에 달했다. 인구수에 비례하기도 하지만 가습기를 편리하게 사용하고자 하는 생활정보력의 차이에서 기인한다고 해석할 수 있다. 문제는 주식시장에서의 개미들처럼 일반 소비자들은 선택의 여지가 없고, 생과 사를 가르는 고급정보에 접근할 수 있는 기회가 극히 제한된다는 것이다.

우리 주변에는 또 다른 가습기 살균제가 너무도 많다. 유전자변형식품(GMO), 유해화학물질을 내뿜는 사업장, 자동차와 아스콘 공장에서 배출하는 미세먼지 등 제대로 숨 쉬고 먹고 살아가기 어려운 세상이 됐다. 개미는 끊임없이 당하고 죽지만 거대 자본가들은 계속 살이 찐다.

주식시장에서 개미들이 자본가를 상대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뭉치는 것이다. ‘가습기 살균제 세상’에서 살고 있는 일반인들이 맘 편히 살아가고, 잘못된 사회구조를 바꾸기 위해서는 정부와 기업의 양심에 기대어서는 불가능하다는 것이 이미 증명됐다. 정부는 무능하고 기업은 양심적이지 않다. 결국, 방법은 촛불을 든 국민들처럼 우리 개미들이 뭉쳐야 한다. 개인생활 속의 소비자가 아니라 사회의 일원으로서의 책임의식을 가져야 할 때이다. 조금 비싸더라도 안전과 사회정의를 지키는 제품을 구매하는 현명한 소비가 필요하다. 땅 속에 사는 진짜 개미들은 현명하게도 뭉쳐서 대응하는 생존방식을 잊지 않고 지속하고 있다. 이제 인간 개미들도 현명한 소비를 통해 역습을 해야 할 때가 온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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