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혜리 청주상당도서관 사서

가끔 아무런 의식 없이, 반복되는 리듬과 단조로운 멜로디를 얹어 흥얼거리곤 했다.

노래인지 시인지 어떤 글의 일부인지 모를 주문 같은 노래를 흥얼거리고 있으면 집에선, “오! 네가 오늘 꽤 상태가 좋구나!” 한다.

덩달아 나는 스스로의 기분을 인정하고 묘한 안정감에 빠지곤 했다.

‘시를 잊은 그대에게’는 읽는 이가 스스로의 심정을 인지하게 하는 강한 힘이 있다. 시가 품은 다양한 주제를 파악하기도 전에 독자가 읽고 느끼는 글의 힘을 의식하게 한다.

이 책은 여러 가지의 이유로 시를 잊고 지냈던 모든 이에게 몇 가지의 주제를 통해 시 읽기의 즐거움을 전하고 있다.

저자는 시인들이 독자들과 소통하고 싶어 했던 주제를 대중가요에서 명화에서 또는 설화에서 심지어 TV방송에서까지 집어내고 있다.

남이 울면 따라 우는 것이 공명이다. 남의 고통이 갖는 진동수에 내가 가까이하면 할수록 커지는 것이 공명인 것이다. 슬퍼할 줄 알면 희망이 있다.-p.82

위의 문장처럼 저자는 공명을 통해 모든 시를 읊는다. 시들이 담은 시적 진실을 찾는 것은 읽는 이의 주관적인 감정과 판단으로 이루어진다.

저자는 공감을 바탕으로 삼고, 글감에서 의미를 발견하는 자세로 시를 가까이 하고 있다.

저자가 지닌 공감의 능력은 정호승 시인의 ‘슬픔이 기쁨에게’에서 여실히 나타난다. 헤어진 연인인지도 모를 대상 슬픔을 주겠다고 선언 한다 그리고는 슬픔은 사랑보다 소중한 것이라고 말한다.

자칫 무시무시한 말로 느껴질 지도 모르는 글은 저주가 아닌 사랑임을 대변해준다.

모나지 않은 공감의 정서로 표현한 내용들은 읽는 이들마다 경험의 교훈에 맞춰 흡수하는데 무리가 없게 한다.

도저히 납득하기 어려운 시들의 해석들은 한쪽 몇 단락 뿐 이지만 곱씹어 감상한 시간은 여러 날 이였음을 짐작가게 한다.

어릴 적 교과서 속 표현들과 글귀들은 순간의 감상으로 시의 깊이를 느끼기는 어려웠다.

‘시를 잊은 그대에게’는 잊고 있던 시간들만큼 거리가 느껴지는 시들은 하나의 주제에서 가지를 뻗어가며 낯섦 속에 친숙함을 갖도록 해준다.

작가는 말한다. 의술과 법률을 논하고 생을 좌우하는 것에 쫓는 것만이 살아가는 목적은 아님을, 시와 아름다움과 낭만과 사랑이 우리가 살아가는 이유여야 한다는 것을 ‘죽은 시인의 사회’ 키팅 교수의 말을 빌려 우리에게 전하고 있다.

어느 면에서 ‘노래’란, 서정이란 철이 없는 장르다. 그것은 정신의 내용을 자기표현의 형식으로 드러내는, 현재적이고 주관적이고 유아적인 것이다.-p.166

서사가 아니고 성인의 문학이 아니고 철이 없으면 또 어떠한가. 오래전 맘에 두고 잊고 지냈던 시 하나 꺼내 실컷 노래해 보는 것도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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