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영철 아동문학가

앞서 가시는 정 장로님의 발걸음이 오늘 따라 빠르다. 아마 내일이면 우리와 헤어진다는 생각에 하나라도 더 보여주시려는 의도 일게다. “1주일이 참 빠르지요? 하기야 저희부부가 필리핀에서 생활한 8년도 지나고 나니 빠르네요. 몇 년 더 있다가 귀국하려고 했는데… 그게 제 마음대로 되지 않네요. 시골에 계신 어머니께서 자꾸 편찮으시니 이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어 저희도 바로 정리하고 귀국할 예정입니다.”

그날 저녁, 간단히 식사를 마치고 우리는 다바오 시내로 나갔다. 시내는 크리스마스를 맞아 다양한 불빛으로 공원이며 대형 건물을 아름답게 장식했다.

“이곳은 가톨릭이 우세한 나라라 크리스마스를 중시합니다. 우리가 처음 여기 왔을 때에는 지금보다 훨씬 더 성대했었죠. 지금은 많이 간소화 되고 시내도 조용해졌답니다. 시청 옆에 있는 대형 야시장을 둘러보시고 제가 꼭 보여 드리고 싶은 장소로 이동하겠습니다.”

정 장로께서 우리를 안내한 곳은 시내에 있는 대형 체육관 이었다. 들어가는 입구부터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서 웅성거리고 있다. 체육관 안쪽으로 들어가니 멀리 농구대가 보인다. 체육관 한쪽 구석에서는 불을 지피어 밥을 하고 있는 사람들도 있고, 다른 한쪽에서는 바닥에 종이를 깔고 잠을 자는 아이들도 있다. 노인들은 음식을 먹으며 사진 찍는 우리를 보며 웃는다.

“류 장로님! 이곳이 바로 산족마을 사람들이 잠을 자는 곳입니다. 다바오에는 이런 곳이 5~6개 정도 있다고 들었습니다. 이 사람들은 우리가 다바오 시내를 다닐 때 돈을 구걸했던 바로 그 사람들입니다. 다바오시에서는 11월말부터 내년 1월 초까지 산족마을 사람들이 시내에서 구걸할 수 있도록 허락했습니다. 그래서 낮에는 온 가족이 시내로 나가 구걸을 하고 밤에는 이 체육관으로 모여 잠을 자는 것입니다.”

나는 그들의 모습에 너무나 충격을 받아 잠시 넋을 놓고 바라보았다. 우리가 영화에서 보았던 피난민의 모습이라고 해야 될까? 아니면 요사이 메스컴을 통해서 본 난민들의 모습이라고 해야 될까? 이런 생각을 하는 동안에도 한 무리의 아이들은 내 앞에 있는 쓰레기통을 뒤지고 있다. 방금 한 아이가 뒤지고 간 바로 그 쓰레기통을… 정신을 차리고 한 옆에서 밥을 먹고 있는 가족을 바라본다. 그들은 무엇이 그리도 즐거운지 웃고 떠들며 반찬도 없는 밥을 먹고 있다. 한 옆에는 소녀처럼 보이는 애기 엄마가 아기를 안고 다독거리며 잠을 재우고 있다. 비록 가진 것은 없고 배가 고플지는 모르지만 그들의 얼굴은 미소와 평안함이 가득하다.

“저 사람들을 볼 때마다 저는 이런 생각을 해 봅니다. 나와 저 사람들 중 누가 더 행복할까? 저의 대답은 항상 저 사람들이 더 행복하다는 것입니다. 왜냐고요? 저 사람들의 얼굴에서는 우리와 같은 분노, 절망 그리고 패배감을 찾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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