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한솔 홍익불교대학 철학교수

시저에게 이런 에피소드가 있다. 그는 31세라는 젊은 나이에 재무관(財務官)으로 로마의 통치아래 있는 스페인에 부임했다. 이따금 스페인 서부(西部)에 있는 가데스에 가서 그는 알렉산더 상(像)아래 서서 뚝뚝 눈물을 흘렸다.

이를 본 사람이 “왠 일 이십니까?”하고 물으면 “나는 내가 가엾어 못 견디겠다! 알렉산더를 보라. 그는 나와 똑같은 나이에 전 세계를 정복하고 있다. 그러나 지금 나는 아무것도 한 일이 없다. 사람들이 알아줄 만한 일을 해 보려고 해도 아무것도 되는 일이 없지 않은가. 그걸 생각하니 슬퍼지는 것이다”하고 자기의 무력(無力)을 한탄했다고 한다.

영웅, 명장(名將)이라고 추앙받는 걸물(傑物)에게도 무력감, 좌절감에 몸서리치는 때가 있다. 위대한 승리자, 성공자도 그 화려한 업적, 명성 뒤에는 좌절과 실의의 감정이 도사리고 있는 것이다. 그럴진데 우리들 범인에게 있어서는 오죽하겠는가. 그래서 처절한 고독감에 몸부림치는 경우도 있는 것이다.

이런 명언이 있다. ‘하늘과 땅 사이에 나 홀로 살아있다고 생각하라. 하늘을 스승으로 알고 신명(神明)을 벗으로 하면 남에게 의지할 마음은 없어진다’ 고독을 이기고 자기 스스로의 힘으로 길을 개척하라고 가르치는 말이다.

고독이란 괴로운 것이다. 아무리 둘러보아야 허허벌판에 외로이 서 있는 자기의 모습에서 사람들은 얼마나 서로 밀어주고 이끌어주는 협동의 세계를 그리워하는가. 그러나 인간이란 한때 실연이라든가 사업상의 처절한 실패라든가 믿었던 사람이 등을 올리는 뼈아픈 배신이라든가 때로는 투옥이라고 하는 처참한 경험을 맛보지 않고서는 완전한 사람 구실을 할 수 없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 오랜 실의(失意)의 생활은 그 차가움이 뼛속까지 사무쳐 한없는 고독으로 인간을 몰아넣게 된다.

그 중에는 그 고독을 이겨내지 못하고 재기할 수 없을 정도로 몸이 망가지거나 노이로제에 사로잡혀 어쩔 수 없이 죽음의 길을 택하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자살 일보 직전이라는 처절한 심경으로 쫓기면서도 여기서 쓰러져서는 안 된다.

여기서 주저 않을 수는 없다고 이를 악물고 버텨 그 난관을 이겨낼 수 있었던 사람에게는 그 이전에는 가지고 있지 않았던 고독을 참고 이겨내야 한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과는 비교도 안 되는 저력(底力)과 결단력이 몸에 베이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원래 결단력이란 고독한 것이다. 아무리 많은 친구가 있고 많은 친척이 있고 많은 동료가 있다 하더라도 최후의 결단을 내리는 자는 오직 자기 한 사람뿐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고독을 참고 이겨내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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