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북연구원 연구위원

요즘 상생(相生)이라는 말을 자주 듣고 자주 하게 된다. 음양오행설에서는 목(木)은 화(火)를, 화(火)는 토(土)를 토(土)는 금(金)을, 금(金)은 수(水)를, 수(水)는 다시 목(木)을 낳음을 일컬어 상생이라고 한다. 나무를 태워 불을 만들고, 불에 타고 남은 재는 다시 흙이 되며, 흙 속에서 쇠가 나온다는 자연의 이치를 일컫는 말인 것 같다.

요즘 우리가 말하는 상생은 이러한 자연의 섭리보다는 농촌과 도시의 상생, 노인과 장년층과 젊은이의 상생, 대청댐과 미호천 상·하류의 상생 등 서로 대립되는 지역이나 세대 사이의 갈등과 격차를 줄이면서 살아가는 의미로 더 많이 사용된다. 농촌과 도시가 서로 발전하고 잘 살아가기 위한 상생발전이 생겨났고 상수원을 공급하는 댐의 상류와 하류의 주민들이 다 같이 상생 발전할 수 있는 방법을 꿈꾸어 왔다.

그런데 상생발전을 위한 오랜 시도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점점 상생과 멀어져 가는 것 같다. 도시와 농촌의 격차는 더욱 벌어졌고 마침내 농촌 마을은 소멸의 단계에 접어들었다. 자립적인 경제활동은 불가능해 졌으며, 70세 이상의 노인이 대부분을 차지한다. 10년, 길게 잡아도 20~30년 후에는 농촌마을은 사라질 것이다. 대신 도시는 넘치고 넘쳐 자꾸만 밖으로 커지고 있다.

최근 최순실과 박근혜 대통령의 국정논단으로 온 국민이 허탈감과 분노에 빠져있다. 어떻게 최순실이라는 한 사람이 한 국가를 이렇게 까지 망쳐놓을 수 있을까? 정말 그렇다면 그녀는 얼마나 치밀하고 영리한 것일까? 본인의 연설문조차 쓰지 못하고 30분짜리 토론도 하지 못한다는 박근혜 대통령은 어떻게 그 많은 비리를 오랫동안 저지를 수 있었을까? 아마도 그것은 그들 뒤에 숨어 있는 기업 즉, 자본 때문이었을 것이다. 상생하지 않는 기업은 정치권뿐만 아니라 온 나라를 병들게 한다.

농촌지역 하천의 가장 큰 오염원인 가축분뇨는 누군가에는 돈 벌이의 부산물이고 누군가에는 깨끗한 삶의 터전을 망쳐놓는 골치 덩어리이다. 수익은 오염을 유발한 축산농가가 가져가고 오염된 하천을 받아들이는 것은 하류지역 사람들의 몫이다. 대기업 공장에서 내뿜는 미세먼지, 유독화학물질은 기업의 통장을 부풀려 주지만, 인근 주민들의 건강을 악화시키고 병원비 지출을 증가시킨다.

복지부와 암센터 중앙암등록본부에서 발표한 ‘시·군·구별 암 발생 통계 및 발생지도’ 보고서에 따르면 충북의 폐암 발생률이 타 지역에 비하여 높게 나타났으며, 인구 10만명당 폐암 사망자가 26.6명으로 전국에서 가장 많다고 한다.

그러나 이러한 소식은 눈에 띄지 않고 해외기업의 유치협약을 맺었다는 이야기만 언론의 주목을 받고 있다. 가습기 살균제로 오랜 시간을 고통 받고 있는 피해자들 앞에서 상생이라는 말은 차마 입에 담기도 힘든 단어일지도 모른다.

음양오행설에서 상생은 끝없이 반복됨을 의미한다. 그러나 우리가 이야기 하는 상생은 더 이상 순환하지 않을 것 같다. 나무(木)를 태워 불(火)을 만들 때 순환을 위해 더 많은 나무를 남겨 두어야 하는데, 지금 우리 사회는 더 많은 불(火)을 만들기 위해 나무(木)를 죄다 태워버리려는 것 같다. 마치 우리 다음 세대는 지구상에서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우리는 상생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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