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세영 건양대학교 군사경찰대학 교수

‘열하일기’는 ‘벗은 제 2의 나다’로 시작한다. 또한“천하를 위하여 일하는 자는 진실로 백성들에게 이롭고 나라에 도움이 되는 일이라면 그것을 본받아야 한다”라는 의미심장한 내용을 담고 있는데 이는 당시 조선의 소중화주의에 찌든 사대부들이 눈뜬장님처럼 중국을 오로지 오랑캐의 나라로 바라보고, 정조를 비롯한 수구세력들이 하나같이 현실에 안주하여 변화를 두려워하다보니 여전히 지독한 가난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는 안타까운 조선의 모습을 떠올리면서 기록해 나갔던 것이다.

어찌 보면 당시 정조를 비롯한 수구세력들의 빛바랜 허세와 안주의식에 대해 박지원이 보냈던 가장 강력한 경고의 메시지이며, 한편으로는 강병부국(强兵富國)을 위해서는 반드시 뼈를 깎는 의식개혁이 필요하다는 점을 알리고자 한 몸부림이었다고 볼 수 있다.

여기에 ‘호질(虎叱)’과 ‘허생(許生)’이라는 소설을 통해서도 자기시대에 대한 냉철한 성찰과 양반사회의 자각과 변화 강조하고 위정자의 무능력과 위선적 태도와 생활을 비유적으로 풍자하여 낙후된 사회 전반적인 모순점에 대한 개혁의 필요성을 동시에 역설하였다. 그는 귀국 후 조정에 벽돌사용, 수레를 통용하자는 제안도 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받아드려지지 않았다. 그러자 55세 때 안의현감이 되어서는 직접 물레방아, 베틀양수기, 수차(용골차) 등을 제작해 활용하게 된다. 이는 한국의 산업혁명이라 불리며 지금도 함양의 상징으로 많은 이들을 감동케 하고 있다. 그러나 조선은 이러한 박지원의 경종과 노력에도 불구하고 끝내 긴 잠에서 깨어나지 못하고 안타깝게도 나라의 운명을 다하는 비운을 겪고 만다.

현재 온 나라가 최순실 사건으로 혼란스러움에 빠져있다. 이 시대에 박지원이 살아 계시다면 우리들에게 무슨 말을 하실까. 수없는 경종에도 불구하고 나라의 운명을 다한 조선처럼 되지 말고 열하일기(熱河日記)를 다시 한 번 정독하면서 그 속에서 해답을 찾으라 하실 것 같다. 그리고 다음과 같이 우리들을 향해 이 시대의 변주곡을 다시 들려주실 것만 같다.

첫째, 위정자들은 혼란한 계기를 틈타 자신들만의 이익을 챙기려하지 말고 진정된 마음으로 나라를 걱정하며 국란을 극복하기 위해 함께 지혜를 모아가라. 둘째, 지금의 위기를 나라를 새롭게 변화시킬 수 있는 좋은 기회로 여기고 무조건적인 비판보다는 창조적인 대안을 함께 찾아가는 성숙함을 보여라. 21세기 관점에서 열하일기를 재조명해 볼 때 박지원은 여행 중 중국의 것을 무조건 배우자는 단순한 메시지만을 보낸 것이 아니라 내면 깊은 곳에서는 하루빨리 조선도 변해 중국보다 더욱 강한 나라가 되어 요동을 비롯한 빼앗긴 겨레의 땅과 실추된 국가 위신을 되찾아야 한다는 간절한 소망이 담겨져 있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는 시대를 읽는 선각자요 진정한 애국자였다. 지금 이 시기에 열하일기가 더욱 가슴에 와 닿는 이유는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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