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충주농고 교장 수필가

세상에 가장 흔한 것 중에 하나가 돌이라 한다. 그 ‘돌과사람’ 사이에는 어떤 인연을 맺고 살아왔을까.

농부는 밭에 돌을 보면 골라내고 싶은 생각이 들겠지만, 건축가나 조경사의 눈에 돌이 보이면 어떻게 아름다운 조형물을 만들 수는 없을까 하고 생각한다. 이렇게 돌의 쓰임새는 헤아릴 수 없이 많지만 보는 사람에 따라 옥(玉)이 되고 패석(敗石)이 되기도 한다.

내가 어릴 때만해도 할아버지가 단단한 차돌로 만든 부싯돌로 담뱃불을 붙이는 것을 보고 신기하게 생각했다. 또 여자들은 공기 돌을 주어 놀고, 사방치기를 했고, 돌을 던져 물수제비를 뜨며 즐겁게 놀았던 옛 친구들은 모두 어디에 살고 있을까. 돌 생각만 하면 강물같이 흘러간 세월에 꿈같은 유년시절이 떠오른다.

말없는 돌 앞에 집나간 남편의 행운을 빌며 치성(致誠)을 올리는 아낙네의 눈물어린 망부석(望夫石)이 있고, 돌부처에 기도하는 스님의 염불하는 목탁소리가 심산유곡(深山幽谷)에 메아리친다 해도, 한수가 모자라 석패(惜敗)하여 바둑돌을 던지고 만다하여도, 그것은 어디까지나 인간의 감성이지 돌은 묵묵부답(不答) 인 것을….

잘생긴 돌을 주어다 잘 닦고 좌대(座臺)를 만들어 앉히고 그 모습을 감상하면 항상 말없이 변함없는 아름다운 모습에 내 마음의 위로를 받기도 했다.

돌을 뚫는 화살은 없어도 돌을 뚫는 낙수(落水)는 있다. ‘현애낙류종능천석(懸崖落溜終能穿石)’ 이란 고사성어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물방울이 돌을 뚫는 것은 힘이 아니다. 오랜 세월 끊임없이 오직 한곳에만 떨어지는 유연하고 꾸준한 반복현상이 아니던가. 나는 이 뜻을 새겨 학업에 정진할 때는 늘 책상 앞에 써 붙이고 소중한 좌우명(座右銘)으로 여겼었다.

산길을 가다보면 흔히 보는 것 이 돌이다. 어떤 것은 가는 길에 걸림돌이 되고, 어떤 것은 디딤돌이 된다. 전자는 부정적인 관점이고 후자는 긍정적인 시각이 아닐까. 그러기에 사람이 세상을 살아가는데도 강자는 위기를 디딤돌 로 삼아 한 단계 도약하지만 약자는 걸림돌로 생각하고 주저 않고 만다.

세상만사 다 잊고 강가 돌밭에 누워 흐르는 강물소리를 들어 본다. 강돌이 여울물에 씻겨 굴러가는 소리가 소곤소곤 들리는 듯하다. 어디로 굴러가는 것 일까. 자연도 인생도 그렇게 돌처럼 굴러가며 사는 것일까. 굴러가는 돌에는 잘난 돌 못난 돌이 따로 없다, 이끼도 끼지 않는다. 인생의 애환도 없는 것 같다. 생명의 향기도 애환도 없는 돌을 보노라면 말도 많고 탈도 많은 변화무쌍한 세속에 항상 불변의 이미지를 심어주는 것 같아 매력을 느낀다.

내가 만일 돌이 된다면 세계화 시대에 적응해나가는 욕망도, 갈등과 분열의 아픔도, 보지 못하고 듣지 못하고 굴러다니는 돌처럼 살고 싶다. 세상이 험하여 풍파에 부서지는 돌이 될망정 늙어가는 내 인생의 고민(苦悶)보다는 돌처럼 사는 것이 더 나은 것이 아닐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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