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주해피마인드 아동가족 상담센터 소장

첫째는 2월생이다. 나는 아이를 여덟 살에 초등학교를 보내야겠다고 생각했기에 아이에게 미리 한글 학습을 시키지 않았다.

입학통지서를 받고 나는 망설였다. 여덟살에 학교를 보내기에는 아이의 발육이 빨랐다. 또래보다 머리 하나가 큰 키는 나에게 망설임을 주었다. 고민에 고민하다가 결국 보내기로 했다. 쓰기는 어려웠지만 읽는 것은 가능했기에 한글을 깨치는 일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입학을 하고부터 나의 고통은 시작되었다. 받아쓰기를 보고 틀린 시험지를 볼 때마다 특히 한글을 가르치지 않았던 나에 대한 자책이 솟구쳐 올라왔다. 그 감정은 곧바로 한글을 잘 익히지 못하는 아이에게 날아갔다. 아이는 점점 엄마와 한글 공부를 하는 것을 멀리했으며, 그런 아이를 억지로 가르치면서 나는 부정적 감정의 종합 세트를 아이에게 다 공개하고 말았다. 한번 달리기 시작한 감정은 주저하기를 꺼리며 급기야 아이에게 손을 대기 시작했다. 공포에 질린 아이는 울지도 못하고 화를 내는 엄마를 바라볼 뿐이었다.

최근에 앨리스 밀러의 ‘사랑의 매는 없다’는 책을 읽었다. 그 책을 통해서 나는 아이에게 매를 댄 그 시간을 고스란히 만날 수 있었다. 책을 읽은 동안 정말 미안하고 부끄러워 눈물이 났다.

저녁 산책을 나서며 나는 핸드폰을 챙겼다. 산책을 마치고 오는 길에 아이와 통화를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무심천 변을 따라서 걸으며 나는 내 안에서 회피하고자 했던 그것이 무엇일까를 생각했다. 걸었던 탓인지 조금은 마음의 체력이 갖춘듯했다. 핸드폰을 켰다.

나는 아이에게 그 시간을 기억하냐고 엄마가 너를 때렸던 그때를 기억하냐고 말했다. 아이는 서둘러 엄마가 잘못한 거 없다고 말한다. 엄마가 그럴 만했다고. 나는 아이의 말을 들으며 진심이냐고 물었다. 엄마를 배려하기 전에 너를 먼저 배려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엄마의 처지에서 생각하기보다는 그 당시 너 마음이 어떠했는지에 집중해보라고 말했다. 얼마간의 정적 끝에 아이는 엄마가 괴물 같았다고, 왜 저러는지 이해도 안 되었다고, 엄마가 싫었다고. 아이의 입에서 나오는 거친 표현들을 들으며 변명하고픈 마음이 일어났다. 엄마는 미성숙했고, 양육 스트레스가 많았다고 말하고 싶었다. 그러나 나는 할 수가 없었다. 아이가 멍하니 나를 바라보았듯이 나도 가만히 아이의 말을 들었다. 충분하게 안전하게 제대로 말할 수 있게 마음의 귀를 열었다. 그리고 어른답지도 엄마답지도 못했다고. 고백했다.

부모들은 자식을 사랑한다고 말한다. 내리사랑이라고 말한다. 이 말도 부분 맞은 말이긴 하다. 하지만 나는 자식들이 부모를 더 사랑한다는 것을, 자식이 부모를 정서적으로 돌본다는 것을 상담현장에서 많이 보아왔다. 죽도록 맞거나 부당한 보호를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아이들은 자신이 잘못해서 부모가 ‘나’를 때렸고 그렇게 때리지 않았으면 오늘의 ‘나’보다는 훨씬 못 살고 있을 거라고, 맞을 만했기에 사랑하는 부모가 나를 때렸다고 말한다.

사랑의 매는 없다. 사랑과 매가 어떻게 동등하게 놓일 수 있겠는가? 사랑의 매는 내가 지금 모순에 빠져있다는 증거일 뿐이다. 매를 드는 이 폭력이 어떻게 사랑이 될 수 있겠는가. 자기 안의 다스려지지 않은 감정을 투사하는 것일 뿐이다. 아이와 나눌 수 있는 것들이 수없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매라는 것을 선택하는 것은 자신의 무능력의 다른 이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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