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남희 음성 남신초등학교 교감

중국에서 단재선생의 혼과 숨결이 담긴 발자취를 따라가 보니 한 걸음 한 걸음이 예사롭지 않다. 나라를 잃고 넓디 넓은 중국 북경에서 우리 민족을 되살리고, 일깨울 궁리를 했던 단재선생! 그 발걸음은 입신양명해 스스로를 빛내기보다 나라와 민족을 높이 세워 민족적 자긍심과 역사의식과 영토의식이 가득 담긴 발걸음이었으리라.

후통은 북경의 작은 골목을 일컫는다. 단재선생이 후통에서 살면서 박자혜 여사와 1~2년의 신혼생활을 하던 곳이기도 하고, 이회영선생이 진스팡지에게 얻어준 후통의 집에서 북경대학 도서관을 오가며 독서를 한 곳이라 그런지 감회가 남다르다.

눈 앞에서 깡마른 단재선생이 검은 두루마기 자락을 날리며 민족해방과 구국의 구상과 조선상고사와 광활한 만주벌판에 대한 영토의식, 고구려인과 발해인에 대한 애정을 키우는 모습이 환영처럼 떠오른다.

쉽게 타협하며 일신의 안위와 내 가정만 지키는 지식인들이 허다분했던 그 시절, 그가 지닌 자존심과 기개는 적과 타협 없이 독립투쟁을 전개하는 동안 ‘독립이란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쟁취하는 것이다’라는 결론에서도 알 수 있다.

땅덩어리는 크지만 무력하게 당하고 있던 중국인들을 바라보면서도 많은 생각과 의지를 심어주었을 것 같다.

일례로 북경에는 북경시민들에게 시간을 알려주던 고루가 있다. 고루는 높은 곳이다 보니 북을 치면 북경으로 소리가 퍼져나갔을 터이고 단재선생이 북소리를 들으며 답답한 가슴을 좀더 다잡고, 높은 고루에 올라 북경 끝까지 바라보면서 조선민중을 어떻게 일깨울지, 어떤 방향으로 나아갈지를 고뇌했을 것 같다. 나라 잃은 백성의 비참함과 함께 구곡간장까지 전해졌을 뜨거운 절절함을 목젖으로 누르며, 조선민중을 어떻게 일깨울까를 고민한 곳이라 하니 감회가 새롭다.

저녁 어스름이 깔릴 무렵 만나기로 한 식당에서 선생의 자부 이덕남 여사님을 뵈었다. SBS방송국의 영상에서 여사님은 “내 시아버지라는 분은 감히 보통사람 정도가 아니라 나라도 배신하고 민족도 배신한 그런 배신자한테 내 목숨을 구걸하지 않겠다. 그러니까 한 마디로 얘기하면 한 번도 진짜 비굴한 역사가 없었고, 단 한 번도 당신의 절개를 구겨 본 역사가 없어. 휘어지지도 않는 분이야. 그런 분의 이제 자손으로서의 긍지는 대단하죠”라고 말했다.

이덕남 여사에게는 그런 긍지가 있어서 말씀 소리도, 모습도 예사롭지 않았다. 한 번도 만난 적이 없는 시아버지지만 단 한 점의 오류나 부끄럼이 없다는 걸 진실되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반면 신씨 집안에 와서 고생한 것을 회한삼아 말씀하실 때에는 평탄치 않은 일생이 읽혀져서 안타깝기 짝이 없었다. 부디 오래 건강하시기를 기원했다.

단재선생과 북경대 도서관과의 인연도 각별하다. 선생은 이 대학의 도서관에서 많은 책을 읽으며 자신의 사상을 발전시켰다.

2016년 10월 17일 수신공문을 보니 진천군 덕산면에 세워지는 학교명이 서전중, 서전고라고 하니 독립투쟁정신을 계승한 것 같아 고마웠다.

용정중학기념관에서 이상설 선생이 세운 서전서숙이라는 푯말을 보고 우리 모두가 교과서의 글로만 근현대사를 배울 일이 아니라 독립운동을 하러 머나먼 간도땅으로 건너간 사람들의 역사현장, 독립투사들의 터전을 직접 보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간절했다. 아마도 멀리서 바라본 일송정과 해란강은 우리 조상들의 투쟁과 피끓는 마음을 알고 있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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