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충주농고 교장 수필가

부정청탁 및 금품수수금지법(김영란법)이 지난 9월 28일부터 시행에 들어갔다.

고급음식점, 상가백화점, 상인들이 울상이라 한다. 왜 그럴까. 지금까지 분에 넘치는 접대(接待), 향응(饗應) 등 다양한 방법의 부정청탁 관행이 얼마나 기승을 부리고 이사회를 부패 왕국이라 할 만큼 심했던가. 이법으로 나마 그것을 못하게 되니 호황을 누리던 업자들의 불만이 터져 나오는 것을 보면 그 실태를 반증하는 느낌이 든다.

한국사회에서 어떤 일을 해도 급행료가 따라붙는다는 말이 있다. 또 그것을 관행으로 여기고 그것 없이는 힘들다는 원성도 높다. 특히 관청에 인허가 업무는 물론 공공기관 내부의 승진 전보 같은 인사에 자기능력만으로는 힘든 것이 현실이라는 것을 내가 40년 공직생활에서 겪은 아픔이었다.

국제투명성 기구에서 조사한 바에 의하면 한국의 공공부문 청렴도는 OECD국가 중 55위, 부패지수 42위로 최하위 권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사회도처에서 부정청탁을 관행으로 여기는 풍토는 국가 경쟁력을 떨어뜨리고 경제성장은 물론 선진 사회로 가는 길에 암적인 장해요인이다. 언젠가는 그 장해를 뿌리 뽑아 청렴한 사회가 돼야한다.

최근 청탁금지법이 시행되고서 어느 학교에서는 학부모가 학교 방문할 때 교문에 설치한 사물함에 소지품을 모두 두고 학교에 들어오도록 했다는 보도가 있었다.

또 학생이 교사에게 꽃 한 송이 달아드리고 캔 커피를 건네는 것이 학생 성적평가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점에서 불가 하다는 국민권익 위원회에서 발표한바 있다. 그것이 국감장에서 사회 상규를 짓밟는다고 질타가 쏟아졌다. 그래서 사제 간에 정으로 주는 것은 직접적인 이해관계가 성립되지 않는다고 오락가락 했다. 촌지(寸志)같은 금품 수수에만 초점을 맞추어 발언하는 의식에는 아직 청탁의 잔재가 남아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부정청탁을 뿌리 뽑자면 작은 일부터 실천하는 강직함이 있어야 하고, 특히 이 사회를 이끄는 리더의 솔선수범과 비상한 각오가 있어야 하는데 그것이 희박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교사는 학생에 대한 성적평가, 인성평가, 생활기록부 기재 등 절대적 갑(甲)의 권한이 존재한다. 그렇기에 촌지라는 미명하에 뇌물청탁으로 사회적 물의를 빚은 일이 얼마나 많았던가. 아직도 이사회지도층, 국민의식에 자리 잡고 있는 부정청탁 잠재의식을 뿌리 뽑기에는 갈 길이 멀다고 생각한다.

밥 한 끼에 3만원, 선물 5만원, 경조사 10만원이라는 3, 5, 10의 한계가 자주 듣는 말이 됐다. 음식점, 상가, 농촌 한우농가까지 이 기준에 불만의 소리가 높지만 어느새 시중에는 그 기준에 맞는 상품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시간이 지나면 차차 정착이 되리라고 본다. 점심시간이면 공직자들은 그 기준에 맞는 식당을 찾기에 식객들로 넘쳐나고 그렇지 못한 고급식당은 한가해 한탄이 쏟아진다.

나도 지인들과 모임을 갖고 자주 식당을 찾는다. 한사람씩 돌아가면서 점심을 사던 것을 각자내기로 바꾸자는 의견에 따르고 있다. 정으로 나누는 자리에 부정청탁이 있어서가 아니라 혼자 부담하다보니 점점 식사수준이 높아져 부담이 되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회비 즉 갹출(醵出), 일본어로 분빠이(分配), 즉 각자 부담(割當)의 형식이 되고 있지만 이는 오래 전 부터 내려오던 관행이 아니던가.

어찌되었든 이 부정청탁법이 시행되고부터는 사회곳곳에서 분위기가 변해가는 느낌이 든다. 우리 사회도 선진 국가처럼 청렴한 사회가 될 수 있을까. 희망을 갖고 기대한다.

모든 것이 첫 숟갈에 배부를 수는 없지 않은가, 수많은 시행착오. 저항이 있다 해도 부정부패로 얼룩진 부패왕국의 오명을 벗고 청렴한 사회가 됐으면 좋겠다. 땀 흘린 만큼의 대가를 받는 농부처럼 정직하고 청렴한 공직풍토가 이루어지기를 기대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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