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무법인 주성 변호사

‘노예 12년’이라는 영화를 접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실화를 바탕으로 평범한 가족의 가장인 흑인이 인신매매에서 비롯된 노예제도 아래 12년간 억울한 노예노동을 하고 가족의 품으로 돌아가기까지의 역경을 그린 작품입니다. 인류가 만들어 낸 인종차별을 바탕으로 한 노예제의 비극의 한 단면을 잘 보여줌과 동시에 숨기고 싶은 미국 역사의 아픔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모든 국민은 법 앞에서 평등하다’라는 명제는 법의 근원을 나타냄과 동시에 불변의 진리입니다.

하지만 위와 같은 진리가 사회 속에서 실현이 되기 위해서는 수많은 시행착오를 겪으며 때로는 다수의 희생을 바탕으로 성장해 온 것은 아닌가 하고 생각합니다. 마치 과거 미국의 남부에서 당연시 되던 노예제도가 이제는 과거 아픈 역사의 한 페이지 정도로 치부될 뿐 올바른 제도라고 여기는 사람은 없을 테니 말입니다. 이처럼 인류는 시행착오를 바탕으로 더욱 발전된 방향으로 사회를 만들어나간다는 점에서 필자는 긍정적인 미래 관을 믿고 사는 편입니다.

하지만 필자가 보기에는 아직도 과연 절대불변의 진리인 ‘법 앞에 평등’이 완전히 실현되는 수준에 이른 것인지는 큰 의문으로 보입니다. 인종이나 성별과 같은 생물학적인 차별이 많이 시정된 것은 사실이나 사회적 차별이 여전히 존재하고 이것이 법 앞에 평등 실현의 장애요소로 작용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언제부터인가 채용공고를 보게 되면 채용구분란에 ‘계약직’ 또는 ‘정규직’이라는 용어가 필수적으로 등장합니다.

또한 언제부터인가 정규직으로 취업을 한다는 것은 많은 ‘계약직’ 채용자와는 다르게 상대적으로 우월하게 취업했다는 의미로 통용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이러한 채용시장에서의 차별뿐만 아니라 사회적으로도 요즘 소위 ‘갑(甲)질’이 큰 화두입니다. 얼마나 사회의 곳곳에 자리 잡고 있었으면 수사기관이 대대적으로 나서며 전담팀을 꾸려서까지 갑(甲)질을 척결하겠다고 공언하고 있습니다. 갑질이라는 것도 보면 결국은 갑과 을의 차별이라는 것에서 나온 비극이 아닌가 싶습니다. 즉 서비스를 제공받는 사람이라는 이유에서, 구매처라는 이유에서, 돈이 더 많은 사람이라는 이유에서 나는 누구보다 위에 있는 사람이기 때문에 그렇지 않은 사람에게는 함부로 할 수 있다는 잘못된 생각이 표출된 것이 바로 갑질이 아닐까요? 이처럼 아직도 언제부터인가 사회적으로 차별을 두는 악습이 서서히 자리 잡아가는 것은 아닌지 걱정입니다. 같은 일을 해도 다른 대우를 받고, 똑같은 사람임에도 마치 조선시대에 양반이 평민을 대하듯 하대를 하는 일이 빈번히 발생하고 있으니 말입니다. 과연 이러한 것이 올바른 것인지는 큰 의문입니다.

이제는 흑인이 대통령이 되는 미국에서 과거 노예제도는 비극일 뿐이라고 치부하고 있으며 사회발전의 저해 요소였을 뿐이라고 평가하고 있습니다. 또한 그 노예제도를 철폐한 대통령은 역사상 가장 위대한 인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우리 사회 속에 존재하는 여러 악습인 사회적 차별에 대한 각종 제도들도 먼 훗날에는 비극일 뿐이며 오히려 사회발전의 저해 요소로 평가받아야 하지 않을까요? 모두들 사회적 차별이 존재하지 않는 사회 속에서 살아갈 수 있는 날이 도래하기를 기원해 봅니다.

SNS 기사보내기
기사제보
저작권자 © 충청매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