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정숙 수필가

센터의 문을 열고 들어가기 전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을 점검하는 것이 어느새 버릇이 되었다.

강사 조정숙이 아닌 한국인 조정숙으로서 두 시간을 보내야한다는 책임감 내지는 자부심이 언제부터인지 모르게 내 마음에 자리 잡은 것이다.

내가 맡은 반은 한국어 토픽 시험을 준비하는 고급반이다.

한국어 토픽이라 하면 한국어를 모어로 사용하지 않는 외국인 및 결혼이주 여성, 외국인 노동자, 유학생들의 한국어 능력을 측정하는 시험인 것이다.

토픽자격을 취득하면 한국에서 취업을 하거나 학업 또는 영주권신청 등에 많은 이득을 볼 수 있다. 그러므로 그것을 취득하고자 하는 사람들이 매년 기하급수적으로 늘고 있다.

우리 반 학생은 총 5명이다.

각자 고향도 다르고 말도 다른 사람들이다. 미찌꼬씨와 유키씨는 일본에서 시집을 왔다. 유키씨는 한국에 온지 15년이 넘었고 중2 딸을 둔 엄마다. 물론 한국어 실력은 수준급이다. 가끔 나도 완벽하게 이해하고 있지 못한 내용을 질문하여 긴장 시키는 사람이다. 고향을 그리워하며 글로 표현하는 미찌꼬씨의 글 솜씨는 프로작가 수준이다.

전신리씨는 중국에서 시집을 온 예쁜 아줌마다. 90이 넘은 시아버지와 결혼하지 않은 시아주버니를 모시며 일까지 하고 있다. 부지런하고 쾌활한 성격으로 우리 반의 분위기를 화기애애하게 만드는 사람이다.

상떼피씨는 캄보디아에서 시집와서 4개월짜리 딸을 둔 새댁이다. 시어머니의 귀염과 남편의 사랑을 듬뿍 받고 있어 얼굴에서 웃음이 떠날 줄을 모른다.

유일한 청일점 타파 디펜드라씨는 네팔에서 온 멋진 청년이다. 분당에서 인도 음식점을 경영하는 선배를 도와 일을 하며 네팔에 두고 온 아내와 고향에서의 행복한 미래를 꿈꾸는 청년이다. 11월에는 결혼 9년 만에 아빠가 된다며 얼굴에 웃음이 떠나질 않는다.

한글이 전 세계 어느 언어보다 과학적으로 우수하다는 것은 학생들이 한국어를 익히는 것을 보면 절실히 공감한다. 자음 모음의 결합 원리만 깨우치면 읽고 쓰는 것은 금방 할 수 있다. 문제는 많은 유의어, 다의어, 관용표현, 어미의 활용에 있어 애를 먹는다. 글은 쉽지만 말이 어려운 것이다. 어릴 때부터 자연스럽게 익힌 말들을 풀어 헤쳐 가르친다는 것은 쉽지가 않다 문장 속에서 직감으로 알아차려야 하는 내용들, 때론 억양으로 의미가 달라지는 말들이 이해가 되지 않아 학생들이 곤란한 표정을 지을 때면 괜시리 그들에게 미안해지기도 한다.

애기를 유모차에 앉혀놓고 수업을 하는 쌍떼피씨는 1시간 수업이 끝나면 아기 모유수유를 해야 한다. 아기가 밤낮이 바뀌는 바람에 잠을 설쳐 수업시간에 하품을 하는 것에 미안해하는 마음 착한 초보 엄마가 졸린 눈을 비비며 내 말에 귀를 기울이는 것을 볼 때 마다 더욱 막중한 책임감을 느끼곤 한다.

모습과 말과 고향, 모든 게 다른 사람들이지만 이들에게는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 마음이 참 따뜻하고 한국을 굉장히 좋아한다는 것이다.

언젠가 식당에서 술에 얼큰히 취한 아저씨가 중국인 종업원에게 “너도 수입산 이냐?”라는 말을 하는 것을 들은 적이 있다. 같은 한국인으로서 얼굴이 후끈 달아올랐다.

다문화국가에 진입한 우리나라가 아직도 그들에 대한 인식이 세련되지 못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들이 우리 사회에서 차지하는 역할이나 앞으로의 문제들을 생각한다면 무조건 배척하며 단일민족의 기억만을 고수하는 것은 생각해 볼일이다.

“선생님 보고 싶어요.”

지난 학기 내가 가르쳤던 진혜민씨가 문자를 보내왔다. 일산에서 중국어 강사자리를 얻어 강의를 하느라 수업에 못 나오게 됐다며 안부를 전한다.

나는 한국어를 가르치는 강사다. 하지만 그들에게 전해주고 싶은 것은 단지 읽고 쓰는 한국어가 아니라 한국어 속에 담긴 한국인들의 지혜와 인정, 해학을 전해주고 싶다.

쌀쌀해진 날씨 때문에 새로 장만한 화사한 가을 옷을 입고 교실에 들어섰다.

“선생님, 옷이 날개라더니 정말 멋져요.”

전신리씨가 밝게 웃으며 말한다. 지난 시간에 배운 ‘옷이 날개다’란 관용표현의 연습이란다.

나는 어젯밤 심하던 어깨통증은 그새 잊고 칠판에 열심히 글을 써 내려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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