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주해피마인드 아동가족 상담센터 소장

얼마 전 상담실을 찾은 아이가 떨어지는 눈물을 닦으며 이렇게 말했다.

“정작 중요한 것에는 관심도 없어요. 몇등 했는지, 몇등급인지만 물어요. 내 기분과 감정에는 관심도 없으면서 내가 무엇을 하고 싶은지 힘든지는 알려고도 하지 않으면서 정말 싫어요. 네가 무얼 하겠어?라는 눈빛 너무 싫어요.” 터져 나오는 울음은 좀처럼 그치지 않았다. 아이는 아빠의 관심을 기다리다 지쳐 자기 안에 있는 분노의 강에 돌을 던지며 소리치는 것 같았다.

하코미 심리치료(Hakomi psychotherapy)에서는 Doing과 Being의 사랑을 말한다. 무언가를 하면서 받은 사랑(Doing)과 존재 그대로 받은 사랑(Being)의 균형감각을 중요하게 다룬다. Being의 사랑이 전제되지 않으면 평화로운 관계 맺기는 어렵다. 상대를 있는 그대로 봐줄 수 있는 일, 쉽지 않다.

‘나’를 있는 그대로 지금의 ‘나’를 긍정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여유나 관대함이 있다면 무엇이 문제이겠는가? 그러나 우리는 항상 무언가를 해야만 인정받았으며 사랑받았거나 체벌을 받지 않았기에 스스로를 감시하며 평가하며 그리고 질책하며 인정받고 싶은 누군가의 눈을 의식하며 살아가는 Doing 사랑 곧 조건적인 사랑에 익숙해져있다.

요즘 아이들은 무기력하다. 연체동물처럼 흐물거리듯 책상에 엎드려있거나 눈을 감은 듯 만 듯 어디를 보고 있는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도통 알 수 가 없다. 마이클 아이언(Michael Eigan)은 정신적으로 기능하지 않고 좀비처럼 지내는 무기력한 상태를 ‘정신적 죽음(psychic deadness)'이라 했다. 자기다움이 없는, 내용은 없고 형식만 있는, 다른 사람이 시키는 대로만 하는 자발성을 뺏긴 아이들에게서 나오는 반응이 무기력이다.

부모들은 누구네 누구처럼, 비교하면서 끊임없이 무언가를 좀 더 하기를 누구보다 더 하기를 바란다. 이럴 때 아이들의 입에서 나오는 마음의 말은 딱 하나다. 아이들은 입 밖으로 말을 내놓지 않지만 무의식적으로 자기 세포 속으로 이 말을 숨기며 의욕을 잃어간다. 빈번하게 스스로 할 수 있는 기회를 놓치며 살아온 시간이 길수록 무기력한 상태는 일찍 찾아온다. 대표적인 것이 과잉보호이다. 상담현장에서 만나는 많은 부모님들은 말한다.

“그래도 최소한은 해야 하는 거 아니에요? 기본은 해야 하는 거 아니에요?”

집에서나 학교서 잠만 자거나, 게임만 하거나 자해를 하거나, 오토바이를 훔치고, 학교폭력에 피해자나 가해자가 되어 있어도 부모들은 한결같이 최소한을 기본을 이야기한다. 아이들은 그렇게 버티고 있는데 죽으라고 버티고 있는데 최소한을 기본을 이야기하며 아이들이 보내는 신호를 그대로 패스해버리는 경우가 많다.

아이에게 어떠한 증상이 나타났다면 손뼉 쳐야 한다. 그 증상이 아이의 마음의 문을 열 수 있는 열쇠이기 때문이다. 관계를 점검 해보는 타이밍이라는 것이다. 그냥 숨만 쉬고 있어도 예쁘다, 내 앞에서 왔다 갔다 해주는 것만 해도 눈부시다 그렇게 아이를 바라보는데 어떻게 무기력할 수 있겠는가? 자신의 빛깔을 내기 위해 반짝반짝 빛을 내기 위해 온전히 자신에게 집중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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