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연 전 청주예총 부회장

필자는 지금 중국 저장성 최북단에 위치한 ‘안지현’에서 살고 있다. 이곳에 소재한 고등학교 학생들에게 한국어를 가르치고 있다. 일과를 마치고 잠자리에 누워 “내가 어쩌다가 이곳에 와서 이 고생을 하고 있지?”라고 반문하며 씁쓸한 웃음을 지어 본다. 우리 인간은 동물과 달리 ‘의지’라는 것이 있다. 의지에 의해 하루하루를 이끌어간다. 그러나 살다보면 뜻하지 않은 상황이 발생해 삶의 물줄기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흐르기도 한다. 이것을 ‘운명’이라고 규정하고 싶다. 이 운명 때문에 필자의 삶이 송두리째 바뀌기도 했다. 이렇게 낯선 땅에서 지내는 것도 운명의 장난(?)이 아닐까?

그러니까 작년 4월 중순 경, 지금 이 학교에서 근무하던 친구로부터 ‘자기는 이 학교와 계약이 금년 6월말로 만료되니, 이곳에서 근무할 생각이 없는가?’라는 전화가 왔다. 필자는 법원 조정위원으로서 일주일에 2~3일 할 일도 있었고, 테니스도 치면서 건강하게 잘 지내고 있었다. 필자로선 의외의 상황이 돌발한 셈이다. 아내는 ‘펄쩍’ 뛰며 반대했다. 그렇지만 절친한 친구로부터 제의한 것이라서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문득 ‘운명’이란 단어가 떠올랐다. “이것도 내 운명인가 보다. 산을 타도 야산을 타는 것보다, 험한 산을 타야 남는 게 있다더라!  난생처음 외국생활 한번 해 보자! 내 인생 마지막 정열과 투혼을 불살라 보자!”라며 용단을 내림으로써 여기까지 오게 됐다. 

필자가 근무하는 학교가 ‘안길상서사립고급중학’이라는 고등학교다. 규모로 봐선 중국전역에서 지원한 학생들이 4천여명이나 되는 거대한 학교다. “나는 한국과 중국 사이에 교량역할을 하는 ‘문화사절’이다”라는 자세로 임했다. 한국어를 가르친다는 것 자체가 ‘문화교류’였다. 그러나 이곳에 와 보니 예상과는 전혀 달랐다. 무엇보다 말이 통하질 않으니 학생들에게 아무것도 해줄 수가 없었다. ‘벙어리 냉가슴’으로 가슴만 치면서 일 년을 허송세월로 보냈다.

학생들에게 아무것도 해준 것이 없이 허송세월만 한 것이 억울하고 부끄러워서, 이를 만회하기 위해서라도 일 년을 더 있기로 작정했다. 지금도 죽기 살기식으로 중국어를 배우고 있는 중이다. 그러자 차츰 이곳 생활에 조금씩 눈이 뜨이길 시작했다. 요즈음은 무엇보다 이 학교가 매우 ‘훌륭한 학교’라는 것을 발견하게 됐다.

무엇이 훌륭한가? 첫째, 선생님들이 훌륭하고, 둘째로는 이 학교 시스템(교육과정, 학교운영체계)이 훌륭하다. 그걸 발견하게 되자 이 학교를 사랑하게 됐다. 나아가 학생들을 사랑하게 되고, 선생님들을 존경하기에 이르렀다. 요즈음 필자는 행복하다. 좋은 학교에서 근무할 수 있어 행복하고, 건강하게 살 수 있어서 행복하고, 가르치는 보람을 느낄 수 있어 행복하다.  삶의 물줄기를 이리로 돌린 ‘운명’에 감사한다. 삶의 물줄기를 이리도 돌리는 계기를 마련해준 친구에게도 감사한다. 삶의 물줄기! 그게 바로 운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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