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영철 아동문학가

올해 여름이 덥기는 더웠는가 보다. 만나는 사람마다 올 같은 더위는 처음이란다. 추석 전날 더위의 끝자락을 붙들고 예비 사위인 한군이 틈을 내어 집에 잠시 들렀다. 대학병원 의사라는 직업이 밖에서 보는 것보다는 훨씬 바쁘다. 진료과목에 따라 차이는 있겠지만 외과의사인 경우는 우리가 편히 쉬는 연휴 때 특히 바쁘다고 한다. 응급환자가 많다보니 식사를 제 때 하기도 어렵고, 수술도 많아 밤을 새우는 경우가 다반사라며 나와 잠시 이야기 하는 동안도 피곤한지 연신 하품을 한다.

사위 사랑은 장모라고 하더니 틀린 말이 아닌 것 같다. 사위의 몸무게가 어떻고 의사가 자기 건강을 챙기지 않는다고 날마다 걱정을 하더니 음식을 차릴 때에는 정 반대의 행동을 한다. 며칠 동안 갈비를 손질하고 재우는가 싶더니 갑자기 전을 부친다. “여보, 제사도 안 지내는데 무슨 전을 붙이고 난리요. 먹고 싶으면 시장가서 조금 사 먹지.”, “추석이라 조금 부쳐 볼려고요. 집에서 해야 맛이 있지 사먹는 것은 좀…”, “거어 참 이상한 말을 하오. 언제는 나보고 시장 음식이 간편하고 맛이 있다고 하더니만.” 아내는 내말은 들은 척도 안 하고 열심히 전을 부친다.

사위의 식성이 좋다 보니 한상 차려놓은 음식이 순식간에 없어진다. 그런 모습을 본 아내의 얼굴은 연신 웃음꽃을 피운다. “추석이라 식당문을 열은 곳이 없으면 집으로 전화하지. 햄버거 먹고 무슨 근무를 할 수 있겠는가? 집에 올 시간이 없으면 지혜가 갔다가 주면 될 것을.” 아내는 사위가 안쓰러운지 계속 먹을 것을 갔다가 놓는다. “여보, 그만 가져오시오. 언제는 한군도 다이어트를 해야 한다고 난리를 피더니만.” 나의 한마디에 아내는 갑자기 눈끝을 살짝 올린다.

식사가 끝나자 딸아이가 사위가 가져 온 선물 안에서 한지에 곱게 쓴 편지를 꺼내어 놓는다. “아빠, 한서방이 결혼식 전에 부모님께 드리는 편지를 썼다고 해요. 한서방 보고 읽어 드리라고 할까요?” “바쁜데 언제 그런 것을 썼어. 이리 내놔라 나에게 쓴 것이니 내가 직접 읽어 볼란다.”

“아버님 어머님께 인사드립니다”로 시작하는 편지는 그 동안 아내 될 딸을 잘 키워 주심에 감사하고 부모님께서 보여주신 화목한 가정을 본받아 자신들도 그대로 이루겠다는 내용이었다. 편지를 읽고 나니 갑자기 가슴 한편이 찡하다.

“일주일 후면 결혼식이 있지? 그래, 두 사람이 가정을 이룬다는 것은 정말 축복받은 일이야. 지금까지는 양가 부모님의 사랑과 보살핌 속에서 살았다면 앞으로는 두 사람이 하나가 되어 세상을 살아가야 할 것이네. 세상은 두 사람의 노력에 따라 천국도 될 수 있고, 지옥도 될 수 있지. 아무튼 서로 열심히 사랑하고 배려하며 화목한 가정을 이루길 바라네.” 조용히 말하는 나의 목소리도 갑자기 떨리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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