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순철 수필가

“대학까지 졸업한 사람이 이런 일을 하고 있어?”

“부끄럽지도 않은가봐?”

그들은 심심하면 나를 안주삼아 질겅질겅 씹는다. 그런 비난을 받아도 변명할 여지가 없다.

9급 공무원 시험에 두 번이나 응시했지만, 공부는 하지 않고 합격하기만을 바라는 비뚤어진 내 심보를 비웃듯 보기 좋게 떨어지고 말았다. 그 후 여기 저기 이력서를 냈으나 면접조차 받지 못했으니 내 실력이 어느 정도였는지 이제야 짐작이 간다.

부모님은 등골이 휘어져가며 공부 시켰는데 이 자식은 아직도 용돈을 타 써야 한다는 사실이 무척 괴로웠다. 그 보다도 진짜 직업전선에 나가지 않으면 안 될 이유는 따로 있었다. 학교 다니면서 사귄 순영이와의 사이에서 태어난 유민이의 분유 값도 대지 못하는 한심한 아빠라는 소리는 죽기보다 더 듣기 싫었다.

교차로신문 구인난을 뒤적거리는데 시(市)에서 환경미화원을 모집한다는 기사가 보였다. 저거라도 해볼까? 시골에 계신 부모님은 내가 근사한 직장에 취직하기만을 손꼽아 기다리실 텐데 그 말을 듣는다면 기절 하실지 모른다는 생각도 들었다.

어느 지방자치단체 환경미화원 7명 모집에 158명이 응시, 22.6대1의 높은 경쟁률을 보였으며 그중 절반가량이 대졸자였다고 하니 입이 딸 벌어졌다. 연봉도 그리 높지 않은 1천800만원 정도라고 했다.

유민이를 나에게 맡겨놓고 슈퍼마켓에서 상품 진열하는 일을 하고 받아오는 돈으로 생활하는 내 몰골이 말이 아니었다. 이 지옥을 한시바삐 벗어나고 싶었다. 부모님께는 당분간 비밀로 하고 시험에 응시하기로 마음을 굳혔다.

원서를 내고 기다리니 서류심사는 통과했으니 체력검정을 받으러 오라는 연락이 왔다. 체력시험은 30㎏짜리 모래가마니 들고 3분 이상 서있기였다. 나는 7분을 버티어서 1등을 했다. 1천m 4분30초안에 달리기에서도 3분 45초로 1등을 했다. 그리고 윗몸일으키기에서도 나를 따라오는 사람은 없었다.

우여곡절 끝에 합격은 했으나 대학교 졸업생 체면이 말이 아니었다. 밤 10시에 출근해서 새벽 6시까지 근무하는데 어느 때는 주말 근무도 해야 했다. 내가 하는 일은 청소 차량을 따라다니며 쓰레기봉투를 실어주는 일이었는데 쓰레기 냄새가 여간 고약한 게 아니었다. 처음 며칠간은 밥을 제대로 먹을 수가 없었다. 집에 와서 목욕하고 옷을 갈아입어도 몸에 밴 큼큼한 냄새는 잘 사라지지 않았다.

우리팀은 3인 1조인데 운전하는 사람은 아예 쓰레기봉투를 만지지 않는다. 우리 팀의 대장이고 모든 지시는 운전사로부터 떨어진다. 기분이 나쁘면 차를 멀찍이 대놓고 기다려서 무거운 쓰레기봉투를 들고 차있는 곳까지 가려면 허리가 아플 때도 있다. 나의 동료는 경력 10년차로 나이도 많고 무난한 편이지만 일종의 학력 콤플렉스 같은 게 있어 보였다. 자신은 초등학교밖에 나오지 못해서 환경미화원을 하지만 대학교까지 나온 놈이 뭔 할 짓이 없어서 이런 짓을 하느냐고 혼자서 구시렁거릴 때도 많다. 하지만 손발이 맞지 않으면 서로 힘이 드는 작업이다 보니 나를 가엾게 여기고 많이 가르쳐주려 노력하는 편이다.

쓰레기 수거는 시민들이 잠자는 시간을 이용해서 하기에 직접적으로 시민들과 부딪칠 일은 거의 없다. 하지만 쓰레기를 길에 흘려놓고 깨끗이 청소하지 않고 그냥 오든가 하면 시청으로 항의 전화 하는 사람도 있고 우리가 가는 시간을 점쳐놓고 기다리다가 직접 야단치는 사람도 있다. 처음에는 그런 사람을 만나면 같이 맞받아치기도 했는데 그때마다 돌아오는 것은 칭찬이 아니라 꾸지람이었다. ‘그런 식으로 하려면 그만 두라’고, 어떻게 얻은 직장인데 그만 둘까? 속으로 끙끙 앓는 날이 늘어만 갔다. 언제 그만 두나 하고 생각할 틈도 없이 1년이 다 되어가고 있다.

석교동 골목 끝에 가면 지은 지 꽤 오래 된 단독주택이 있다. 슬레이트 기와를 올려서 지붕만 보면 멋들어진 한옥같이도 보였다. 다른 집 앞은 담배꽁초라든가 휴지가 어지럽게 널려있어도 이 집 앞은 언제나 티끌하나 보이지 않을 정도로 깨끗했다. 쓰레기봉투는 항상 20리터짜리를 사용하는데 골싹하게 묶어 내놓아서 치우기에 편했다. 그것도 자주 내놓는 게 아니라 한 달에 두세 번 정도여서 신혼부부나 연세 지긋한 부부가 사는 것으로 생각 되었다. 이 골목을 마지막으로 우리 차는 쓰레기 집하장으로 들어간다. 그러면 우리 일과도 끝이다.

언제 부터인가 석교동 끝집 쓰레기봉투 담는 방식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주인이 바뀐 것은 아닌 것 같은데 종량제 봉투가 아닌 일반 비닐봉지에 쓰레기를 담아서 내놓는가하면 분리하지 않아 뒤죽박죽이 되곤 했다. 세상 그러지 않던 집에서 그런 일을 하니 무슨 일인가 궁금하기도 하고 짜증이 나기도했다. 같이 일하는 관우형님은 수거하지 말자고 하는 극한 상황까지 내몰렸지만 차마 그럴 수는 없었다. 리우올림픽도 끝나고 금메달의 열기도 서서히 식어가는 어느 날이었다. 그날도 수거를 하려고 보니 웬일인지 8할쯤 되게 담긴 쓰레기봉투가 놓여있었다. 이제 제대로 분리를 하는가 보다 하고 쓰레기봉투를 싣기 위해 들었는데 이건 쓰레기 담긴 봉투가 아닌 모래를 담은 것 같이 무거웠다. 관우 형님도 인상을 북북 쓴다. 가연성쓰레기를 담았다면 고작 2~3k 정도 밖에 되지 않을 봉투 무게가 족히 5kg은 넘어 보였다.

“여기서 까버려, 필시 폐기물들을 집어넣은 게 뻔해.”

나도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었다. 관우 형님의 말에 따라 쓰레기봉투를 북 찢었다. 쓰레기에 속에 기저귀 같은 낡은 천으로 둘둘 말은 묵직한 뭉치가 나왔다. 그것을 조심스레 풀어헤치자 놀랍게도 은행에서 발행한 동전 세트와 올림픽 기념주화가 나왔다. 1952년 헬싱키올림픽 기념주화를 비롯해 ‘88 서울올림픽, ‘12 베이징올림픽 기념주화까지 빠짐없이 나왔다.

“응! 이게 뭐야?”

관우 형님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나도 놀라기는 마찬가지였다.

“이거 무척 비싼 것이잖아. 어떻게 하지?”

“어떻게 하긴요.”

나는 초인종을 눌렀다. ‘딩동, 딩동’ 이윽고 현관의 불이 켜지고 문 열리는 소리가 나더니 잠옷 차림의 할아버지가 나왔다. 무척 점잖아 보였다. 저런 분이 무질서하게 분리하지 않은 쓰레기를 버렸으리라곤 전혀 생각 들지 않았다.

“이 꼭두새벽에 누구요?”

“어르신! 쓰레기봉투 안에서 이런 것이 나왔는데 잘못 버리신 것 같아서요?”

“아니! 리우올림픽 기념주화를 같이 두려고 온 집안을 다 뒤집어엎다시피 했는데 여기에서 나오다니? 우리 집 사람이 모르고 버렸나 봐요. 정말 고마워요.”

할아버지는 올림픽 기념주화 세트를 가슴에 끌어안고 어린아이처럼 활짝 웃으신다. 이 고마움을 어떻게 갚아야 좋을지 모르겠다며 들어가서 시원한 음료수라도 먹고 가라고 한다. 노인의 뜻은 고맙지만 폐를 끼쳐서는 안 될 것 같았다.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이기에.

나는 노인에게 먹은 것이나 다름없이 생각하겠다며 목례를 했다. 관우 형님의 등을 떠밀어 얼른 차에 올라타며 ‘출발’을 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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