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영철 아동문학가

지나고 나면 아무것도 아닌데 그 당시로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해 고민에 빠지는 경우가 있다. 요사이 내가 바로 그런 형국에 처해 있다. 남들이 그런 일을 당했을 때는 시답지 않은 일을 가지고 그런다고 내 잣대로 평가도 했는데 내가 직접 당하고 나니 그들의 마음이 이해가 된다. 이래서 ‘역지사지’라는 사자성어가 탄생했는가 보다.

딸아이가 외국생활을 마치고 한국으로 온지가 벌써 3년째이다. 공부도 좋고, 직장도 좋지만 결혼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하루 빨리 귀국해야 한다는 아내의 강력한 주장이 받아들여진 것이다. 귀국한 딸에게 혹시 하여 넌지시 물어 봤다. “나는 외국인 사위도 괜찮다. 너를 사랑하고 일생을 함께할 사람이 있다면 언제든지 데리고 와라. 국제화 시대에 그게 무슨 흠이 되겠냐.” 그러나 아내의 의견은 나와 달랐다. “아니 당신 지금 무슨 말씀을… 난 외국인 사위 싫어요. 결혼하면 분명히 사위 따라 외국에서 살 건데, 가족은 함께 살아야 가족이지. 날마다 서로 그리워하며 사는 것 난 싫어요.”

올 초에 후배가 마땅한 자리가 있다고 중매를 하였다. 서로 바쁜 사람들이라 잘 될까 걱정도 했지만 반년이 지나자 상견례 이야기가 솔솔 나온다. 두 사람 모두 나이로나 사회 경험으로나 지성인으로서 조금도 손색이 없기에 기쁨마음으로 약속 날자를 잡았다. 약속한 장소에서 주인공을 앞세워 양가부모가 만나니 마치 오래 전부터 만났던 사람들처럼 화기애애하다.

일사천리로 결혼식 날자와 예식장을 정하고 나니 제일 먼저 나타난 고민이 바로 청첩장이다. 일가친척이야 단출하니 큰 걱정은 없는데 청첩을 해야 할 친구와 지인들의 범위가 애매하다. 그래서 이미 자녀 결혼식을 치룬 친구들에게 문의하니 십인십색이다. “우리는 양가에서 50명씩 청첩을 내기로 결정하고 결혼식을 했는데 나중에 초청 받지 못한 친척들하고 친구들한테 얼마나 혼났는지 몰라. 자기들을 무시했다고.” “나는 친분이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 모두에게 청첩을 했다네. 그 중에는 분명 내가 보낸 청첩장이 청구서 같은 느낌이 들었던 분들이 있었을 거야.“

어제 밤, 중국 출장 중인 딸아이로 부터 전화가 왔다. “아빠, 청첩장 몇장을 인쇄하면 될까요? 인쇄소보다 인터넷으로 신청하면 싸다고 해서 인터넷으로 신청하려고 하는데. 저는 50장이면 충분해요. 아빠께서 필요한 장수를 결정하셔서 저한테 알려 주세요.” 그렇지 않아도 청첩장 때문에 고민에 빠졌는데 딸아이까지 재촉을 하니 점점 더 고민스럽다.

“여보, 무슨 고민 있어요? 얼굴이 좀 어두워 보여요. 지혜를 시집보내려니 아까워서 그래요?” “아니요. 청첩장 때문에 좀 그렇다오.” “여보, 청첩장 문제 너무 어렵게 생각하지 마세요. 세상에서 하는 관례대로 우리도 그대로 합시다. 오고 안 오고는 그분들이 알아서 하겠지요. 우리가 그것까지 생각하며 고민하다가는 결혼식 하기도 전에 지쳐 넘어질 거예요” 어쩌면 아내의 생각이 정답일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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