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지디제라티 연구소장

출생이 운명을 결정하는 신분사회는 오늘날도 엄연(奄然)히 존재하나 민주주의란 이데올로기 속에 묻혔을 뿐 경제력과 학력이 특권화로 대물림되고 있다. 이러한 때 교육부의 한 당상관이 아무리 술좌석이라 해도 조신(操身)하지 못하고 말실수를 했다가 서인(庶人)으로 강등됐으니 부스럼을 자초(自招)한 셈이다.  

현대판 신분제의 부활은 정부 고위관료는 말할 것도 없이 대학, 병원, 기업 등 어느 조직회에서나 그러한 의식이 잠재되어 있다. 드라마에서 대기업 안방마님의 행태를 보면서 상류사회의 이중적 삶이 비춰지고, 최근에 회자(膾炙)됐던 땅콩회항 사건, 대기업 회장의 운전기사와 대학에서 대학원생의 갑질 행위 등은 빙산(氷山)의 일각이다.

옛날이나 지금이나 신분에 좌우되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니까 ‘99%의 민중은 개, 돼지 같은 존재라는 말’은 실언이 아니라 이와 같은 인식을 가진 사회 고위층들이 많을 것이라는 것이 옳은 것이다. 흙수저와 금수저와 같은 집안의 출생이 사회적 지위를 결정하는 지금 사회는 분명히 보이지 않는 양극화 신분제 사회이다.

지금도 청와대 승정원 승지의 재산 축척 과정으로 온나라 안이 시끄럽다. 조선시대에도 정승이나 판서를 하고 낙향을 할 때쯤이면 99칸 고대광실을 지어놓고 교육사업을 한다해 면세혜택을 받은 것은 오늘날과 별반 다르지 않다.

지금은 고위층이지만 조선시대에서는 중인이었던 판검사들이 뇌물사건 또한 마찬가지이다. 사형을 집행하는 말단 신분인 망나니에게도 고통없이 쉽게 한 번에 목을 치라고 뇌물을 주었을 정도라면 그 이상 관리들에게는 얼마를 주었을지 궁금하다.

현재 자본주의에 살고 있는 우리는 이러한 상류층들을 비판하면서도 자연스러운 듯 살아가고 있다. 가끔 필력으로 언론을 통해 상소하고 있을 뿐이다. 최근 성주에서는 샤드 문제와 관련해 유림들이 실제 상소문을 대통령에게 올리기도 했다. 또한 개천에서 용이 나듯이 각종 고시를 통하거나 박사 또는 유학을 해서 상류계층으로 신분상승을 노려 특히 서민층에서는 사교육 열풍으로 아이들만 들볶이고 있다. 실제로 어느 자치단체에서는 사무관으로 임용되거나 승진되면 조선시대와 같은 교지(敎旨)를 만들어 주어 자긍심을 고취하고 책임감을 높이기 위한 의미였다고 하나 현대판 신분 상승의 홍보라고 보여진다.  

제일 빠르게 상류층으로 신분이 전환되는 것은 출세이다. 고위관료나 학자 또는 재벌이 되면 모든 양반층들도 굴복시키면서 자신은 상류층의 대열에 드는 것이다. 이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바로 이렇게 힘들게 쌓아 올린 신분제가 무너지는 것이다. 그래서 비리를 저지르고 감옥에 가지 않으려고 변호사비를 천문학적 숫자로 써대며, 설령 감옥에서 징역을 산다해도 실제 황태자는 수 백만원의 일당으로 황제노역을 하면서 감액하는 것이다. 이는 우리 사회가 이미 구조적으로 봉건적 신분제와 같은 계급사회가 고착화되었음을 의미한다. 

우리나라는 갑오경장을 계기로 신분제도가 형식상 사라졌다. 그럼에도 보이지 않는 신분제는 존재한다. 그러한 것을 제도적으로 막기 위해 연금제도와 같은 경제적 수단을 도입했지만 이 또한 상류층에게 더 혜택이 주어지는 결과를 낳았다.

권력층들의 신분적 차별을 없애기 위해 여론을 형성하고 특히 SNS와 같은 최첨단 수단을 통해 봉기(蜂起)하기도 한다. 이번 교육부 관료의 징벌 또한 신문고의 역할이 컸다. 우리 사회는 1%의 지배 엘리트층보다 99% 민중이 많은 사회이지만 민중이 없으면 지배층도 없다. 이러한 조직에서 적응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사회조직과 활동으로 이들에게 저항하고 견제하며 주체적 자아(自我)로 살아갈 때 바람직한 사회로 지속 발전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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