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주해피마인드 아동가족 상담센터 소장

누군가에게 관심이 생겼을 때 당신은 어떤 방식으로 말을 거나요?

어린 시절 친구들과 고무줄놀이에 빠져있는데 갑자기 나타나 줄을 끊고 달아났던 친구가 있었다. 이제 마음 다잡고 공부 좀 하려고 책상에 막 앉으려 하는데 방문을 벌컥 열고 “공부 좀 해. 공부”라고 말하는 엄마도 있었다.

고무줄을 끊고서 도망가는 것도, 방문을 벌컥 열며 말하는 것도 말 걸기의 하나이다.

평소에 과묵했던 사람들이 술만 마시면 말이 많아지는 경우가 있다. 술의 힘을 빌어서 쌓아둔 자신의 생각이나 감정을 날을 잡은 듯 쏟아낸다. 그 자리에 있는 사람들은 무슨 죄인가 싶지만 말이다. 일방적이다. 산만하고 좀 과격하다싶은 행동, 파격적인 옷차림도 말 걸기의 하나의 방식이다. 게임도 자해도 극단적인 말 걸기의 하나이다.

우리는 관계 안에서 태어나고 관계 안에서 살아간다. 세상에 나만 있다면 문제될게 없다. 사랑해서 가족을 구성하지만 같이 지내는 그 순간부터 부딪치기 시작한다. 내가 머문 방문을 열고 나서는 순간부터 싫든 좋든 접촉이 시작된다. 사소한 일상으로든 일로든 우정이나 사랑이라는 이름으로든 말이다.

일로 인한 스트레스를 호소하는 사람들보다 관계에서 오는 불편함을 호소하는 사람들이 많다. 자신이 생각한 감정과 다른 반응에서 오는 당혹감이나 불쾌감 때문이기도 하지만 자세히 들어다보면 불편함은 당연하다고 생각한 곳에서부터 시작된다. 나로서는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그 지점에서 부터 불통은 시작된다.

아무리 힘든 직장도 자신과 소통이 잘되는 동료가 있다면 출근하는 발걸음이 그리 힘들지 않을 것이다. 가기 싫은 학교라도 친구가 있다면 그리 싫기만 한 장소는 아닐 것이다. 문제는 소통이 되는 사람이 없을 때, 그 소통의 질이 부딪치면 그냥 부서질 것 같은 플라스틱 같은 친근감일 때가 문제다. 그럴 때 우리는 살맛이 나지 않는다.

살아가는데 필요한 것들은 많다. 생의 필수품 중 중요한 하나를 뽑으라면 나는 유능한 의사소통이라고 말하고 싶다. 이 유능함의 기준점은 ‘나도 좋고 너도 좋고’이다. 얼마만큼 원활하게 주고받기가 이루어지는가에 있다.

일방적인 소통은 상대방을 미치게 한다. 무조건적인 사랑은 사실 근사한 말 같지만 무조건은 일방적임에 가까운 말이기도 하다. ‘엄마가 너를 사랑해서 그래, 아빠가 널 생각해서 그래’라는 말을 자주 듣고 자주 한다. 사실 틀린 말은 아니다.

나의 어머니 역시 자신의 말만 하신 분이셨다. 지극히 당신의 감정에만 충실하셨다. 억지다 싶을 만큼 맹목적인 어머니의 자식 사랑이 어느 순간부터 난 힘들었다. 불합리하다 싶었다. 아무리 이야기해도 부메랑이 되어 되돌아올 때 느끼는 절망감이란….

아이는 지금 라면이 너무도 먹고 싶은데 몸에 좋은 친환경적인 밥상을 차려놓고 자꾸만 먹으라고 하면 아이의 마음은 어떨까? 부모로서는 당연한 것이 아이에겐 불편할 수 있으며 말문을 막아버릴 수도 있다.

당연한 것은 세상에 없다. 상대는 ‘나’가 아니다. 아무리 사랑한다고 해도 상대는 ‘나’가 될 수 없다. 다만 내가 하는 표현과 네가 하는 표현을 통해 서로의 교집합을 만들어가는 것이다. 서로의 다른 방식들을 나누어 섞으며 공통의 영역을 넓어가는 것이다.

SNS 기사보내기
기사제보
저작권자 © 충청매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