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병숙 수필가

“언니! 어떻게 알고 나왔수. 아휴! 바쁘실 텐데 너무, 너무 미안해요. 언니, 이렇게 마중 나와줘서 정말 고마워요.” 오후 5시, 데이케어센터에서 돌아온 시어머니가 내 손을 꼭 잡고 하는 말씀이시다. 나는 날마다 이렇게 어머니와 상봉을 한다.

내겐 되풀이되는 일상이 어머니에겐 언제나 ‘처음’이다. 어머니의 시곗바늘은 늘 현재다. 과거는 이미 그 빛을 잃은 지 오래다. 현재에 충실한 삶. 우리가 늘 추구해왔던 그 명제 속에 어머니가 계시다. 알츠하이머를 앓고 있는 어머니의 세계는 그래서 또 다른 차원의 세상일지 모른다는 의구심이 가끔 일어나기도 한다.

어머니는 나의 남편을 당신의 오빠로 알고 있다. 따라서 나는 당연히 올케언니가 되었고 호칭도 며느리에서 언니로 바뀌었다. 당신 손으로 키운 손주들마저 조카라고 부른다. 아무리 고쳐 드리려 해도 요지부동, 도리 없이 우리는 모두 어머니의 친정식구가 되었다. 1948년 월남한 뒤 단 한 번도 갈 수 없었던 고향, 어쩌면 어머니는 지금 그리워 눈물짓던 그 곳에 비로소 안착한 것인지도 모른다.

어머니의 겉옷을 옷걸이에 거는데 주머니가 불룩했다. 꺼내보니 종이접기 시간에 접은 작품, 일명 공주거울이었다. 분명 어제, 같은 것을 가져와 “이거 언니 가져요.” 하며 내 손에 쥐여 주었는데 웬일일까? 하루 사이에 또 하나 만들었을 리 없고, 예쁘다고 칭찬했더니 그것이 갑자기 생각나 다른 어르신 것을 가져온 것은 아닐까?

난감해하며 여쭤보니 거두절미하고 “언니! 이거 가져요. 내가 가지고 있으면 뭐해요. 내겐 아무 소용없어요. 언니가 주머니에 넣고 다니다 화장할 때마다 보면 얼마나 좋아요. 내 것은 누구 주지 말고 언니가 다 가져요.”라는 말만 되풀이하셨다. 걱정되어 데이케어센터로 전화를 했다. 다행히 종이접기 선생님이 샘플로 놓고 간 것이란다. 올케언니 준다며 달라고 부탁, 부탁하시기에 복지사가 챙겨 드렸단다. 순간 왈칵 눈물이 쏟아졌다. 아휴, 우리 어머니 정말 못 말리겠다. 어린 나이에 시집와 멋도 부릴 줄 모른다고 늘 걱정이더니 결국 그 마음을 연거푸 전하고 계셨다. 기억을 잃은 어머니가 오히려 역으로 내 기억을 자꾸만 불러내고 계시니 이 무슨 아이러니인가. 도대체 어머니가 바라보고 있는 나는 누구일까?

일주일에 한두 번씩 데이케어센터에서 만들어 오는 작품은 그 종류도 다양하다. 다양한 동물 모양을 접어 넣은 달력이 시작이었다. 항상 싱싱해 보이는, 비누로 만든 장미꽃 바구니와 마른 꽃을 넣은 향주머니는 주무시는 머리맡을 지키고 있다. 숯을 넣고 만든 화분이 공기를 맑게 하는 지 어머니의 컨디션은 늘 맑음이다. 어버이날이 들어 있는 5월엔 카네이션으로 만든 화환과 바구니로 집안이 환했었다. 집에서 기르는 애완토끼의 습격으로 대머리가 되어버린 잔디 인형, 증손자들의 표적이 됐던 사탕부케는 그 잔해만 남아 있다. 어머니는 그런 것들을 가져오면 늘 “이거 언니 가져요.” 하며 내게 내밀곤 했다.

시장갈 때 꼭 들고 가라고 강권(?)하는 종이가방도 두 개나 된다. 기다란 목걸이와 깜찍한 팔찌를 만들어 왔기에 얼른 당신 몸에 치장해 드렸더니 극구 사양하며 나더러 멋지게 하고 다니라 하셨다. 이 장신구들은 세트로 함께 만든 보석함에 담겨 문갑 가운데를 의기양양 차지하고 있다. 당신 방의 문에는 어머니의 함자가 크게 적혀 있다. 그러니까 어머니의 방은 개인 전시장이기도 하다.

어머니는 솜씨가 좋아 집안의 웬만한 소품들은 직접 만들곤 했다. 치매가 온 후에도 재봉틀로 옷을 만들던 손, 그 야무진 손끝으로 어머니는 이렇게 멈춤 없이 작품을 만들어내고 계시다. 어머니의 선물은 매주 점점 더 쌓일 것이다. 이것들은 몽땅 내 것이다. 나는 어머님이 지정한 유일한 상속자다. 더는 무엇을 바라겠는가!

어머니는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데이케어센터에 출근(?) 하신다. 어머니는 그곳에서 일하고 월급을 받는 줄 알고 있다. 어머니가 하는 일 중 가장 중요한 일은 콩과 팥을 분리하여 바구니에 담는 일이다. 무슨 영문인지는 모르겠지만 이는 국가를 돕는 일이라고 굳게 믿고 계신다. 매일 아침 어머니를 모시러 데이케어센터 차가 오면 어머니는 손을 흔들며 “내가 가서 돈 많이 벌어다 언니 다 줄게요. 나는 이 세상에서 언니가 제일 좋아요. 언니만 믿고 살아요. 언니, 집에 혼자 있지 말고 나가서 볼일 보고 오세요.” 하며 활기차게 집을 나선다. 이보다 확실한 팬은 없을 것이다. 어머니는 나의 광팬으로 팬클럽 왕회장이시다!

어머니와 나는 참으로 오래 함께 살고 있다. 30여 년을 훌쩍 넘겼으니 친정엄마 품에서 보낸 시간보다 더 긴 세월을 함께하고 있는 셈이다. 어머니의 눈빛만으로도 그 마음을 읽은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어머니는 처녀 시절 이야기나, 당신 시집살이의 감춰진 이야기, 또는 은밀한 비밀이야기도 서슴없이 내게 털어놓았다. 어머니는 기억 중에 어렵고 힘들었던 일부터 잊어버렸다. 그것이 어머니를 긍정의 세계로 안내하고 있는 것 같다. 과거와 미래의 걱정이 사라진 현재 속에서 어머니는 어쩌면 일생 중 가장 평안한 시간을 보내고 계신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기억을 잃어버리고 아니고는 기실 아무것도 아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드는 때도 있다. 아무리 슬픈 이야기를 해도 금방 잊어버리는 것, 그것은 어쩌면 일종의 축복이지 않을까?

어머니는 가진 것이 아무것도 없으시다. 옷가지마저 단출하다. 아낌없이 다 내어주고 빈 둥지로 계신다. 아니다. 어쩌면 어머니는 기억이 왕성했을 때보다 더 많은 것을 채우는 중인지도 모른다. 원초적인 평화가 천진한 웃음을 타고 샘물처럼 고이는 소리, 은은하게 들려오는 것 같다.

눈을 감고 꾸는 것이 꿈이라면 눈을 뜨고 꾸는 꿈이 치매라 했다. 마치 꿈을 꾸는 듯한 눈빛 넘어 어머니는 오늘 또 어떤 꿈을 꾸고 계신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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