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정숙 수필가

30여년 전, 결혼 승낙을 받으러 친정집 뜨락을 올라서던 남편은 마당에 쓰러져있던 할아버지 지팡이를 고쳐 세우고 마루로 올라섰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할아버지는 “그 놈 참…”하며 흐뭇한 미소를 지으셨다.

준비를 단단히 하고 예비 처가를 방문했던 남편은 본관이 어떻게 되냐? 아버님 함자가 어떻게 되냐? 딱 두 가지 질문만 통과 한 후에 너무나 쉽게 승낙을 얻어냈다.

엄마에게서 나중에 들은 얘기지만 두 가지 질문은 형식상 질문이었고 지팡이를 세워놓고 들어오는 모습에서 이미 점수를 땄다고 했다.

딸의 인생을 책임질 사람인데 사람 됨됨이도 꼼꼼히 살펴보지 않고 허락 한 것 아니냐고 볼멘소리를 했다.

“하나를 보면 열을 안다.”

무엇을 보았던 건지 할아버지는 뜻 모를 말씀만 하시고 셋째손녀 사위를 흡족해했다.

10년 넘게 운동모임을 함께하는 선배가 딸을 출가시킨다고 했다. 명문대 졸업에 좋은 직장에 다니며 집안도 좋고 잘생긴 사윗감이라며 좋아했다. 혼기를 앞둔 딸을 둔 나는 뭐하나 부족함 없이 말 그대로 완벽남, 사위를 보는 선배가 무척이나 부러웠다.

사위가 맘에든 선배는 딸 결혼에 아낌없는 투자를 했다.

우리 같은 서민은 흉내 내기도 힘든 그런 결혼식이었다. 행복해하는 신부와 가느다란 눈에 눈웃음이 살살 넘치는 신랑의 모습이 오래 기억에 남았다.

만날 때마다 선배는 딸 내외의 행복한 모습을 전했고 살림 솜씨가 서툰 딸을 위해 반찬부터 청소까지 애프터서비스를 한다며 행복한 불평을 했다.

2년 후 손녀가 생기고 선배의 행복했던 불평은 언제 부턴가 진짜 불평으로, 자주 들려왔다. 썩 괜찮았던 사위는 언제부턴가 독선적이고 이기적인 사람으로 표현되었다.

그럴 때 마다 문득 문득 선배의 얼굴에 어둠이 스쳐갔다. 낙천적이고 쾌활한 성격이라 10년 넘게 보아오면서도 그런 모습은 본적이 없었다.

타인의 일은 빠른 세월 속에 쉽게 잊혀 지기 마련이다.

오년쯤 지났을까?

“이혼시켜야 할 것 같애.”

선배가 무겁게 입을 열었다. 오년이란 시간은 갈등과 분노의 시간이었다. 뭣하나 흠잡을 것 없는 사위는 흔히 말하는 분노조절장애를 가진 사람이었다고 했다.

상식적으로 이해가 되지 않는 행동들과 반응들, 반복되는 폭언과 폭행에 견디다 못한 딸이 처음 보따리를 싸갖고 집으로 왔을 때 선배는 타일러 보냈다고 했다.

‘여자는 결혼하면 그 집 귀신이 돼야 한다’는 고리타분한 논리를 내세워서.

지금 생각하면 그때 그렇게 했던 자신이 너무 바보 같아 견딜 수 없다고 했다. 그 사이 딸의 표정은 점점 그늘이 져가고 마음엔 병이 들기 시작했다. 하지만 신혼 때 흔히 있을 수 있는 투닥거림이라 생각을 하며 넘겼다고 했다.

눈이 발목까지 빠지던 어느 겨울 밤, 양말도, 겉옷도, 걸치지 못한 채 애를 안고 들어서는 딸의 모습을 보고 온 몸에 피가 빠져나가는 느낌이었다고 했다.

부모로서 사회적 윤리만 내세우고 딸의 아픔을 같이 공감해주지 못했다는 자책감에 더 힘들었다고 했다.

치료를 받겠노라는 사위의 애매한 약속과 엄마로서 갈등하는 딸의 입장을 보며 어떠한 결정도 내리지 못하고 있는 선배를 보며 ‘사람이 쉽게 바뀌지 않는 건데’하는 말을 마음속으로 삼킬 뿐이었다.

아들이 과학 고등학교에 입학을 하고 학부모 회의에 참석했을 때 교장 선생님이 하신 말씀이 생각이 났다.

과학고 특성상 조기 졸업도 해야 하고 명문대를 보내야 한다는 조급함으로 가득찬 엄마들에게 교장선생님은 일주일 동안 수업안하고 인사 하는 것과 예의 범절 등 인성 교육만 시키겠다고 하셨다.

이후로 어쩌다 학교를 갈 때 마다 밝게 인사하는 아이들의 모습을 보며 교장선생님의 교육 철학이 이해가 됐다.

쓰러져있는 어른의 지팡이를 그냥 지나치기 뭣해 세워 놓는 것은 기본 상식이라고 생각하는 남편의 작은 행동 하나에서 사람 됨됨이를 읽으신 할아버지의 판단은 틀리지 않았다. 작은 다툼이야 있었지만 아직까지 보따리를 싸 본적은 없으니 말이다.

‘열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고 외면에 보이는 것만으로 내면에 감춰진 본성까지 읽어내기란 쉽지 않다. 더구나 사랑에 빠져 있을 땐 곰보도 보조개로 보인다고 하지 않는가?

너나없이 한 둘뿐인 내 자식이 귀하고 최고인 세상이다. 귀하고 소중한 만큼 제대로 된 인성을 가진 사람이 되도록 하는 것이 내 아이를 내어놓은 세상에 대한 도리가 아닐까 생각해본다. 자식은 부모의 거울이라고 하지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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