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충북작가회의 회장

이모 전화를 받고 난 후부터 어머니는 노심초사하셨다. 외가 동네에서 농사를 짓고 있는 이모는 철철이 수확만 하면 전화를 했다. 뭐를 뽑아놓았으니 가져가라, 뭐를 따놓았으니 가져가라, 뭐를 털어놨으니 가져가 애들 먹이라며 성화를 댔다.

본래는 칠월 초 쯤 어머니를 모시고 이모에게 갈 작정이었다. 마침 그 때쯤 그 근처에 일이 있어 가는 길에 들를 계획이었다. 매일매일 바쁘다는 핑계도 있었지만 삼 백리나 떨어진 이모 집에까지 가서 푸성귀나 다름없는 농작물을 싣고 오자니 기름 값부터 계산이 앞섰다. 그런데 마늘을 뽑아 놓았다는 연락을 받고난 다음부터 어머니의 온갖 걱정은 시작되었다. 헛간도 좁아 어디 들여놓을 데도 없는데 비라도 오면 다 썩어 내버리고 말 것이라는 둥, 매달 데도 없는데 생물을 첩첩이 쌓아놓았다가 몽땅 떠버릴 것이라는 둥 걱정이 태산이었다. 나중에는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것까지 당겨서 하셨다.

도저히 7월 초까지 버틸 수 없을 것 같았다. 어머니 걱정을 덜어드리는 길은 하루라도 빨리 이모 집으로 가는 방법뿐이었다. 새벽같이 아침을 먹고 이모 집으로 향했다. 어머니는 떠나자마자 이번에는 어둡기 전에 와야 한다며 돌아올 길을 걱정하셨다. 걱정을 달고 사시는 분이라 귓등으로 흘려버리고 길을 재촉했다. 몸과 마음은 피곤해도 고향으로 가는 길은 언제나 편안했다.

이모네 집은 상상 이상이었다. 일년에도 몇 번씩, 이미 수십 년을 봐왔는데도 도무지 적응이 되지 않는다. 대문도 없는 마당부터 집안까지 거둬들인 작물과 자루들이 뒤엉켜 발 디딜 틈조차 없다. 차라리 고물상도 이모 집보다는 더 어지럽지 않을 지경이었다. 집안을 내박쳐두고 이모는 밭에서 마늘을 캐고 있었다.

뙤약볕 아래서 땅에 붙은 듯 구부리고 앉아 호미질을 하고 있는 모습을 보니 짠한 마음보다 화부터 치밀어 올랐다. 입은 차림 그대로 밭으로 들어섰다. 옷 버린다며 이모는 만류했지만 싸놓은 마늘만 날름 싣고 가는 것도 무치한 일이었다. 마늘을 덮었던 비닐을 걷고 호미로 마늘을 캤다. 얼마 지나지 않아 땀은 비 오듯 얼굴을 타고 흐르고 등줄기는 땀으로 범벅이 되어 팔을 움직일 때마다 옷이 감겼다. 구부린 허리는 끊어지는 듯 하고, 쪼그린 채 오리걸음을 걷느라 허벅지는 터질 듯 아팠다. 잠시 허리를 펴려고 일어나면 눈앞이 캄캄해지며 하늘이 빙빙 돌았다. 이러다 죽을 수도 있겠단 생각이 들었다.

이모가 말릴 때 못이기는 척 그만둘 걸 괜히 달려들었단 후회가 마구 밀려들었다. 어려서 고향을 떠나기는 했지만 나도 농촌 출신이다. 그런대도 가져다 먹기만 했을 뿐 농사가 이처럼 힘든 줄은 정말 모르고 살았다.

그 순간 이모가 떠올랐다. 나는 잠시 해도 죽을 지경인데, 평생을 매일처럼 이 일을 했을 이모를 생각하니 염치없을 뿐이었다. 언젠가도 연락을 받고 왔다가 바리바리 자꾸만 트렁크에 쑤셔 넣는 이모에게 가져가야 먹지도 않는 것을 차만 지저분해진다며 짜증을 낸 적이 있었다.

봄부터 씨앗 뿌리고 가꿔 농사를 지은 이모도 있는데, 다 지어놓은 작물 싸놓고 가져가라는 것도 이런저런 핑계를 내세워 차일피일 미룬 것이 죄송했다. 싣고 가면서도 힘들었을 이모 생각은 않고 철없는 소리를 했던 내 자신이 부끄러웠다. 이제부터라도 연락이 오면 즉시, 주는 대로 싣고 와야겠다.

SNS 기사보내기
기사제보
저작권자 © 충청매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