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주해피마인드 아동가족 상담센터 소장

그녀의 부고가 올까봐 나는 걱정이 태산이었다. 틈틈이 그녀의 카카오톡 프로필을 확인하면서 그녀의 생사를 가늠하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기도 했다. 이런 불안감은 오랜만에 그녀에게서 연락이 오면서부터이다. 그녀를 만날 약속을 잡고 그녀에게 줄 선물로 그녀의 모습을 담은 초상화를 그리다 보니  장례식장 국화더미 속에 굳게 입을 다물고 있는 영정사진이 연상되면서부터 내 불안이 무엇인지 분명하게 깨닫게되었다. 그녀를 잃어버릴지 모른다는, 다시 볼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게 나를 무력하게 만들었다.

사실 그녀의 죽음을 내게 알려줄 사람은 없다. 그녀의 병상을 지킬 수 있는 기회를 그녀나 그녀의 남편이 내게 줄까. 그만큼 우리는 가까운가? 그만큼의 우정을 나누웠는가를 묻는다면 자신할 수 없다. 생의 결정적 순간을 나눌 만큼 친밀할 수 있는 관계는 어떤 관계인지가 궁금했다. 남에게 민폐를 끼치는 것을 죽기보다도 싫어한 그녀가 내게 연락할 리가 없다고 단정하면서도 그녀만의 스타일이라고 인정해주기에는 살아있는 우리의 시간이 너무 짧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녀도 나도 아직 살아있다. 시간이 남아있는 것이다.

오래 전 대학원 박사과정 수업에서 그녀를 만났다. 그녀도 나도 타과생으로 수업을 참여한 것이라 어색한 수업 분위기를 감수해야했다. 그녀는 작고 단정한 용모, 또랑또랑한 목소리를 가지고 있었다. 발표를 할 때나 무언가 질문을 할 때  꽤나 공격적인 화법을 썼다. ‘이를테면’이나 ‘그렇다면’이라는 말을 자주 사용했다.

그런 그녀에게 내가 관심을 갖게 된 것은 그녀가 암환자이고 항암치료로 인해 깡마른 몸이 됐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였다. 그녀의 고통이 짐작되면서 나는 다른 시선으로 그녀를 보기 시작했다. 특히 병으로 오는 죽음의 경고는 곧 새로운 삶으로 초대를 이끄는 일이기도 하다. 지금까지 살아온 것 들과의 결별을 시도해보라는 곧 변화를 꾀하라는 바로 이순간 지금의 자신에게 시선을 두라는 메시지로 나는 읽는다.

영원한 것은 없다. 영원할 것 같은 것들은 있겠지만. 스스로가 누군가를 향해 걸어가는 그 순간, 무엇인가와 누군가와 지금의 나를 연결하려는 그 순간을 나는 영원이라 생각한다.

사랑은 눈길을 통해 온다. 세상의 공통어가 시선이듯이 내 마음을 전달하고 싶을 때 깊이깊이 상대의 눈을 들여다보면 오해없이 자신의 마음이 전달되곤 했던 경험들이 누구나 한번쯤은 있었을 것이다.

그 눈길을 나눌 우정의 시간이 우리에게 남아있다. 살아있는 생명으로 나눌 수 있는 가장 값진 이름. 이 순간을 놓치지 말아야겠다. 용기를 내어 그녀에게 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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